피아노 소리 고운 어린이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집으로 옮기면서 피아노를 장만했다. 그무렵 피아노 장만할 목돈이 따로 없었지만, 참말 어찌저찌 피아노를 들였다. 옆지기가 멧골 외딴집에서 아이와 함께 누릴 놀이를 말하기에, 용을 써서 피아노값을 글삯으로 벌었다. 우리 집은 그때부터 멧골집이었고, 그 이듬해에 전라남도 시골집으로 옮겼으니, 따로 피아노학원 같은 데에 다닐 길이 없고, 피아노 교사를 깊은 두멧자락까지 모실 길조차 없다. 옆지기는 어릴 적에 피아노를 조금 배웠다지만, 큰아이는 누구한테서도 피아노를 배운 적 없다. 가끔 몇몇 손님이 아이한테 ‘피아노학원 교습을 하는 손가락질’을 알려주려 하곤 하는데, 큰아이는 언제나 혼자서 제 가락대로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 조용한 아침나절, 큰아이는 문득 생각난 듯이 피아노 앞에 앉아 차분하게 건반을 누른다. 이제껏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는 가락이 흐른다. 노랫가락 곱다고 느껴 동영상을 찍는다. 옆에서 지켜보지 않는 쪽이 좋겠다 싶어, 동영상 찍는 사진기만 살짝 올려놓고 다른 방으로 갔는데, 피아노를 다 친 아이가 사진기 만지면서, 그만 동영상이 송두리째 사라진다. 아쉽다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아이가 제 가락을 다시 살려서 칠 테니 걱정할 일 없다고 느낀다. 스스로 받아들인 소리를 스스로 가락으로 선보이는 큰아이 피아노인 만큼, 나날이 새로운 빛이 아이 손가락에 깃들며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리라 믿는다.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가락을 통통 칠 적에도 듣기에 아름답고, 아이 스스로 처음으로 빚는 가락을 열 손가락에 얹어 마음껏 들려줄 적에도 듣기에 아름답다. 4346.11.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