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씨앗 책읽기

 


  가을비 제법 내렸는데에도 부추씨가 떨어지지 않는다. 가을바람 드세게 불었는데에도 부추씨가 씩씩하게 달라붙은 채 안 떨어진다. 얘들아, 너희들 새로운 자리 찾아서 가야 하지 않겠니. 까맣게 씨앗 맺은 지 꽤 지났잖아.


  부추풀 씨앗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꽃대가 바싹 말랐다. 한손을 뻗어 씨앗주머니 아래쪽 줄기(꽃대)를 톡 끊는다. 이렇게 끊어도 씨앗이 주머니에서 안 떨어진다. 씨앗주머니를 통째로 들어 집 둘레 곳곳에 하나씩 던진다. 우리 집 둘레에서 새봄에, 또 새해에, 앞으로 꾸준히 예쁜 줄기 올리고 고운 꽃 피우기를 바라면서 부추풀 씨앗주머니를 던진다. 이곳에서도 부추풀 돋고, 저곳에서도 부추풀 돋기를 빈다. 민들레도 고들빼기도 씀바귀도 냉이도, 우리 집 둘레 곳곳에서 씩씩하게 자라기를 빈다. 유채풀도 갓풀도 신나게 자라고, 모시풀도 제비꽃도 즐겁게 자라기를 빈다. 풀들아, 우리 집 둘레에서 푸른 숨결 나누어 주렴. 우리 집이 이 마을에서 조그마한 풀숲 이루어 풀숨과 풀바람 일으키는 샘물이 되도록 해 주렴. 4346.11.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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