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215) 역할 1 :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든 역할
성주의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든 역할일 거라는 예감이 든다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2006) 125쪽
“성주의 여자 친구 노릇”은 “성주 여자 친구 노릇”이나 “성주한테 여자 친구 노릇(하기는)”으로 다듬습니다. ‘예감(豫感)’은 ‘생각’이나 ‘느낌’으로 손볼 수 있어요. “미리 느낀다”를 뜻하는 한자말 ‘예감’이니 “예감이 든다”를 “미리 느낀다”나 “먼저 느낀다”로 손보아도 됩니다. “역할일 거라는”은 “역할이겠다는”으로 손봅니다.
한자말 ‘역할(役割)’은 “(1)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 ‘구실’, ‘소임’, ‘할 일’로 순화 (2) 역(役)”,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씁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일본 한자말’이기에 다른 낱말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자주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막상 ‘역할’이라는 일본 한자말은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교과서에도, 문학책에도, 신문글에도 이 한자말은 자꾸자꾸 나타납니다.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든 역할일 거라는
→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들다는
→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들겠다는
→ 여자 친구로 있자면 힘들겠다는
→ 여자 친구로 지내기면 힘들다는
…
보기글을 생각합니다. 이 글월에서 ‘역할’과 ‘노릇’이 겹치기로 나옵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일이 나쁘지 않다지만, 뒤에 나오는 ‘역할’을 덜어내면 한결 낫습니다. 아니, 이 글월에서는 굳이 뒤에 ‘역할’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국어사전 뜻풀이를 보아도 ‘역할’은 고쳐쓸 낱말로 풀이합니다. ‘구실’이나 ‘노릇’이나 ‘몫’이나 ‘자리’와 같은 우리 말이 있으니, 이러한 한국말로 알맞고 바르게 쓸 수 있으면 됩니다.
역할 분담 → 할 일 나누기 / 몫 나누기 / 맡은 일 함께하기
중대한 역할을 한다 → 크나큰 노릇을 한다 / 큰일을 한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 제 할 일을 잘하다 / 제몫을 다하다
비서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 비서 노릇까지 한다 / 비서 일까지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하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이 글월은 “저마다 맡은 몫을 다하다”나 “모두들 맡은 일을 다하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부장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 같은 보기글은 “부장이 하는 일을 맡아 할 사람”이나 “부장 일을 맡아 줄 사람”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일본 한자말이기 때문에 고쳐써야 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우리들이 넉넉히 쓰던 말이 있으니, 오늘날에도 이 말을 즐겁게 쓰면 됩니다. 쉬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한국말을 가다듬고 아낄 수 있으면 됩니다. 4340.1.30.불/4342.8.7.쇠/4346.11.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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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여자 친구 노릇은 힘들겠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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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307) 역할 2 : 선생님의 역할
그 학급에 속한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건 바른 항해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크다
《정창교-마이너리티의 희망노래》(한울림,2004) 97쪽
“그 학급에 속(屬)한 아이들”은 “그 학급 아이들”이나 “그 학급에 있는 아이들”로 다듬습니다. “어떤 환경(環境)에서건”은 “어떤 터전에서건”이나 “어떤 곳에서건”으로 손보고, “바른 항해(航海) 길로 나아갈”은 “바른 길로 나아갈”로 손봅니다.
선생님의 역할이 참으로 크다
→ 선생님 몫이 참으로 크다
→ 선생님 자리가 참으로 크다
→ 선생님이 할 일이 참으로 많다
…
이 자리에서는 ‘역할’만 ‘몫’이나 ‘구실’이나 ‘노릇’이나 ‘자리’나 ‘할일’ 들로 고쳐써도 잘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쳐쓰더라도 토씨 ‘-의’를 붙여서 “선생님의 몫”이나 “선생님의 노릇”처럼 적는 분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봅니다. 낱말 하나는 다듬어도 말투를 옳게 가누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글월을 더 손질해서 “선생님이 할 일이 참으로 크다”라든지 “선생님이 맡은 일이 참으로 크다”라든지 “선생님이 마음쓸 일이 참으로 많다”처럼 새롭게 다시 써 봅니다. 이렇게 적어 본다면 토씨 ‘-의’는 어디에도 들러붙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큰일을 맡는다
선생님이 큰일을 해야 한다
선생님이 큰일을 하는 자리에 있다
…
낱말 하나하나 알뜰히 살펴서 쓸 때에 아름다운 만큼, 말투 또한 차근차근 살뜰히 돌보며 가누어서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옳고 바르고 알맞으며 사랑스럽다 싶은 낱말을 잘 골라서 쓸 때에 아름다운 만큼, 옳고 바르고 알맞으며 사랑스럽구나 싶은 말투로 생각과 뜻을 보여줄 때에 아름답습니다.
낱말 하나 아름답게 다스리는 일이 아름답습니다. 말투 하나 아름답게 추스르는 일이 아름답습니다. 낱말 하나가 큰 몫을 하고, 말투 하나가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4340.7.18.물/4342.8.7.쇠/4346.11.1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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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급 아이들이 어떤 곳에서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면 선생님이 할 일이 참으로 많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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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3, 4, 5번 글이 있는데, 글을 새로 쓰고 고치는 데에 힘과 품이 많이 들어,
나중에 따로 더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