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책읽기

 


  나는 군대 이야기를 아주 싫어한다. 내 입으로 무언가를 놓고 ‘싫다’고 말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첫째가 바로 ‘군대’요, 둘째는 ‘전쟁’이고, 셋째는 ‘폭력’이다. 군대와 전쟁과 폭력은 언제나 한동아리이다. 군대와 전쟁과 폭력은 다른 데로도 쉽게 이어진다. 이를테면, 학교와 회사와 공공기관으로 이어진다. 학교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와 위계조직으로 짠다. 학교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전쟁하듯이 일을 하고, 모든 행정을 폭력과 같이 벌이고야 만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이야기만큼 싫어하는 이야기도 어쩔 수 없이 하고야 말까. 기쁘며 즐겁다고 떠올리는 어떤 이야기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와 얽힌 날에 어쩐지 설렌다. 슬프며 괴롭다고 떠올리는 어떤 이야기 있으면, 이러한 이야기와 얽힌 날에 어쩐지 거북하다.


  누군가 나한테 ‘군대’나 ‘전쟁’이나 ‘폭력’이라는 낱말을 뱉으면, 손가락부터 덜덜 떤다. 소름이 돋도록 싫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사내들 보면, 부디 군대라는 곳에 안 가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젊은 사내들은 잘 모른다. 왜일까. 스스로 겪지 않고서는 모르기 때문일까. 입시지옥도 굳이 스스로 겪어서 알아야 하는 일일까.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이나 남녀차별이나 학력차별이나 계급차별도 구태여 우리가 스스로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도시에서 안 살고 시골에서 살다 보니, 또 도시에서 아직 살던 지난날에도 아파트마을 아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다 보니, 딱히 제도권 회사에 들어가서 지내는 ‘사내 동무’를 거의 안 만났다. 나는 대학교를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두었는데, 아직 대학교에 깃들 적에도 선배나 동기나 후배는 군대 이야기를 참말 징하게 술안주로 삼았다. 회사(출판사)를 다닐 적에도 사람들(사내)은 술이 조금 들어가면 으레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재미있나? 군대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나?


  군대 이야기란 참말 재미없고,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재미없다고 하는데,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누군가 있으면, 나는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를 살짝 꺼낸다. 지오피나 선점에 있을 적에는 축구도 농구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날마다 눈이 1미터씩 내리더라도 일요일을 맞이하면 ‘중대장도 대대장도 연대장도 행정보급관도 명령이나 지시가 없었’으나, 분대장인 병장들 명령과 지시를 받들어 크고작은 연병장 눈을 신나게 치운다. 그러나 모든 눈을 치우지는 못하고 운동장 눈을 이렁저렁 치우고는 온몸이 새빨갛게 얼어붙어도 공을 찬다. 눈밭에서 공을 차면 공이 거의 안 구르지만, 사타구니부터 얼어붙어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지만, 온통 눈으로 덮이는 한겨울에 너무 추운 내무반에서 제대로 달구어지지 않는 난로 곁에서 벌벌 떨기도 싫어서, 눈밭 축구를 한다. 내가 꺼내는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란 이런 나부랭이들이다.


  비무장지대 맨 안쪽이라 늘 총을 들고 다니는데, 정작 ‘하극상’을 할까 봐 실탄은 안 준다. 우습지. 고참뿐 아니라 소대장과 하사관과 중대장 모두 날마다 끔찍하게 주먹과 군화발을 휘두른다. 쫄따구는 날이면 날마다 얻어터지며 지내니까, 비무장지대라 하더라도 실탄을 주었다가 총에 맞아 죽을까 봐 실탄 지급을 안 한다. 아무튼, 실탄 없는 빈 총을 들고 다녀야 하는데, 순찰길에 떡하니 2미터 넘는 멧돼지가 코앞에 나타나는 일이라든지, 옆 중대에서 총을 버리고 월남한 가녀린 북녘 병사를 보고는 무서워서 떨다가 총으로 쏘아죽인 일이라든지, 옆 중대에서 간부들한테 얻어맞아 죽은 아이가 지뢰 밟아 죽었다며 거짓보고 올리는 일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들이 내가 들려주는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 나부랭이가 된다. 나는 군대에서 도깨비불을 자주 보았는데, 도깨비불 나온 데는 모두 고참이나 간부한테 어처구니없이 얻어맞아 죽은 넋이 있다고 했다.


  2013년 군대는 뭔가 달라졌을까? 모르지. 달라진 구석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어느 군대이든 전쟁을 하려고 만들며, 전쟁을 하려고 만드는 군대는 폭력을 밑바탕으로 깐다. 이 나라가 일본제국주의 식민지가 아니라 한다면, 군대 아닌 평화를 생각하고, 전쟁 아닌 사랑을 헤아리며, 폭력 아닌 어깨동무로 나아갈 노릇이라고 느낀다. 참말, 군대란, 군대 이야기란, 군대에서 축구를 한 이야기란, 재미없다. 군대도 전쟁도 폭력도 재미없으니까.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