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0.24.
 : 가을빛 누리는 자전거

 


- 가을빛이 곱다. 이 고운 날 아이들과 가을빛 듬뿍 누리고 싶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까무룩 잠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낮잠을 거르는 듯싶더니,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을 무렵 고개를 폭 떨구며 잠든다. 얘야, 조금만 더 졸음 참으면 자전거수레에서 잠들며 가을바람 마실 수 있었을 텐데.

 

- 자전거마실 나서기 앞서, 큰아이가 대문을 열어 준다. 이제 큰아이는 기운차게 대문을 잘 연다. 큰아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참 대견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큰아이가 어머니하고 놀며 이마와 무릎에 그린 별 무늬가 또렷하다. 너는 자전거순이가 되면서 별순이가 되는구나.

 

- 바람을 가르며 가을내음 마시면서 우체국으로 달린다. 시원스레 달려 우체국에 닿아 소포를 부치는데, 아차, 수레에 실은 소포꾸러미 말고 가방에 넣은 소포꾸러미 있는데 가방을 안 메고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가방을 메고 와야 한다. 큰아이가 가게에 들러 얼음과자 사 달라 말하지만, 얼음과자 담을 봉지도 가방에 넣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훅훅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집으로 돌아간다. 작은아이는 아직 깨어나지 않는다. 가방을 얼른 짊어지고 나온다. 이동안 큰아이가 마을 고샅길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준다. 참 씩씩하구나. 마을 어귀로 군내버스 지나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 다시 자전거를 면소재지로 달린다. 우체국에 들러 소포를 마저 부친다. 가게에 들러 아이들 과자와 얼음과자를 장만한다. 집으로 돌아간다. 아까 달린 길을 또 달리고 싶지 않아 논둑길로 접어든다. 나락을 거의 다 베어 빈들 가득한데, 빈들 가운데 볏짚을 논에 그대로 깔아 둔 곳을 한 군데 본다. 요즈음 시골 흙지기 가운데 볏짚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나락을 베면 곧바로 볏짚을 기계로 단단히 묶어 소를 공장처럼 키우는 곳에 팔곤 하는데, 이곳은 볏짚이 논에 있다. 자전거를 멈춘다. 아이한테 볏짚을 만져 보라 얘기한다. “벼리야, 여기 논에 죽 깔아 놓은 저 마른 풀포기는 볏짚이야. 나락 열매를 훑고 남은 볏줄기이지.” 나중에 우리가 지을 논을 장만하면 모를 내어 손으로 심고, 가을에 낫으로 벼를 베어 나락을 훑은 뒤, 이 볏짚으로 새끼롤 꼬아 이것저것 만들어 볼 수 있을 테지. 그릇도 받침도 주머니도 무엇도 모두 읍내 가게에 가면 아주 손쉽게 값싼 플라스틱 물건으로 살 수 있다지만, 머잖아 볏짚으로 살림살이를 조물조물 엮어서 꾸리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 작은아이도 이 빈논에서 볏짚을 만지며 함께 놀면 더 즐거울 텐데. 우리 식구들 시골에서 살지만 막상 볏짚 하나 구경하거나 만지기도 참 힘들구나.

 

-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억새가 잘 자란 논둑길 지나는데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하나 꺾어 달라 한다. 동생 몫까지 두 포기 꺾는다. 집으로 달린다. 큰아이가 대문을 열어 준다. 그런데 집에 아무도 없다. 옆지기가 작은아이를 데리고 마을 한 바퀴 돌러 나왔나 보다. 어디에 있을까. 마을 언저리 휘 둘러보는데 저 앞에 있다. 작은아이도 손에 억새 한 포기를 쥔다. 너는 어머니가 하나 꺾어 주었구나. 두 아이가 집안에서 억새놀이를 하며 억새꽃이 온통 날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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