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수 있는 마음
바쁜 일이 있을 적에는 한 줄만 차근차근 읽어도 돼요. 굳이 긴 글이나 여러 글을 다 읽지 않아도 되지요. 바쁜 일이 있으면 바쁜 일에 마음이 사로잡히기 마련이라, 책이나 글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습니다. 책이나 글은 바쁜 몸으로는 못 읽기 때문입니다.
바쁜 사람은 노래를 제대로 못 듣습니다. 바쁜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못 합니다. 바쁜 사람은 밥맛을 제대로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하늘빛과 햇빛과 웃음빛을 찬찬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안 바쁠 때에, 아니 느긋할 때에,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비로소 책을 읽습니다. 느긋하면서 아늑하고 따사로울 적에 찬찬히 노래를 듣고 사랑을 하며 밥맛을 느낍니다. 느긋한 삶에서 느긋한 말이 샘솟아요. 아늑한 삶에서 아늑한 말이 흘러요. 따사로운 삶에서 따사로운 말이 고운 빛으로 거듭나요.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