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같은 글씨를
깨알같은 글씨를 읽는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하게 책이 쌓인 헌책방 책시렁 한쪽 깨알같은 글씨로 작가와 출판사 이름이 적힌 책들 사이에 새삼스레 깨알같은 손글씨로 무언가 적어서 살며시 알리는 쪽글을 읽는다. 아니, 이 글씨를 누가 알아본담? 아니, 이 글씨는 누가 알아보라고 썼담?
누군가 틀림없이 알아볼 사람은 알아보겠지. 이 책들 바라던 사람은 즐겁게 알아볼 테지. 이 책 하나 즐겁게 장만할 뿐 아니라, 나긋나긋 따사로이 적바림한 손글씨 쪽글 하나 기쁘게 맞이할 테지.
헌책방이기에 볼 수 있고, 작은책방이라서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깨알글씨이다. 그런데, 더 헤아리면, 이 책을 책시렁에 꽂으면서 ‘얼른 좋은 책임자 새로 만나서 잘 읽히기 바라’는 책지기 마음이 깃든 깨알글씨이다. 그저 이 책 하나에만 이 깨알글씨 붙이고 싶었을까? 모든 책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 깃들었으니 다 다른 깨알글씨를 수북하게 붙이고 싶었으리라. 종이에 찍힌 글을 읽으며 글쓴이 넋을 맞아들이고, 책이 꽂힌 책시렁 사이를 돌아보면서 책지기 얼을 받아들인다. 4346.10.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