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초피나무 풀빛

 


  어린나무는 어리다. 어린나무는 쑥쑥 자라지 않는다. 여러 해에 걸쳐 아주 천천히 자란다. 이동안 어린나무를 둘러싼 숱한 풀은 높이높이 자란다. 다른 풀은 봄부터 가을까지 어린나무 위를 몽땅 덮을 만큼 높다라니 자라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다른 풀은 가을이 되어 시들고는 모두 말라죽는데, 어린나무는 가을이 되건 겨울을 맞이하건 시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


  어른 아닌 어린이 손가락 마디보다도 작기 일쑤인 어린나무를 바라본다. 줄기도 작고 잎사귀도 작다. 어른인 내 눈길 아닌 아이들 눈길로 바라보아도 어린나무는 참 작다. 그러나 이 작은 어린나무에는 어른나무와 똑같은 기운이 서린다. 어른나무와 똑같은 숨결이 흐르고 어른나무와 나란히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하늘숨을 쉰다.

 

  어린나무 곁에는 으레 어른나무가 있다. 어른나무가 벼락을 맞거나 사람들이 베거나 했다면, 어린나무는 한결 씩씩하고 야무지게 자라서 스무 해 마흔 해 지나면 새 어른나무 되어 숲을 밝히고 마을을 빛낸다. 그리고, 어른나무 된 이 작은 어린나무는 지난날 저 스스로 겪으며 살아냈듯이 조그마한 씨앗 흙땅에 떨구어 새 어린나무 자라도록 아름드리 그늘과 품을 베푼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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