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손

 


  깊은 밤에 작은아이가 끙끙거립니다. 왜 그러는가 하고 일찌감치 알아채야 하는데, 작은아이가 그만 바지에 쉬를 하고 나서야 알아차립니다. 작은아이는 아직 쉬를 많이 싸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일으켜서 오줌그릇에 마저 누도록 합니다. 바지를 갈아입히고 다시 잠자리에 누이는데 이불 한쪽 제법 젖었습니다.


  작은아이 가슴을 토닥이고 나서 오줌그릇을 비우러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바깥이 훤합니다. 몇 시쯤 되었기에 이렇게 훤한가 헤아리는데, 아직 깊은 밤이잖아 하고 생각하고, 달이 밝은가 하며 하늘 올려다보니 참말 보름달 둥그렇게 밝습니다. 마을 곳곳에 선 전등 불빛보다 훤한 달이 있습니다.

 

  보름달이 매우 밝지만, 달 곁에 별빛 함께 초롱초롱합니다. 달이며 별이며 고운 하루로구나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옵니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잡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 누워야지요.


  아침에 어떤 밥을 지어서 함께 먹을까요. 오늘은 빨래를 얼마나 해야 할까요. 아이들과 무얼 하며 놀까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글로 빚어 이웃들과 나눌까요.


  내 손은 삶을 살찌우는 손이면서 아이들 밥을 차리는 손이고 빨래를 하는 손입니다. 내 손은 아이들 가슴 토닥이는 손이면서 하늘바라기 하는 동안 기지개를 켜는 손입니다. 내 손은 비질과 걸레질 하는 손이면서 자전거를 모는 손이요 풀을 뜯는 손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까마중 열매 따는 손이 될 테고, 밥을 차리는 사이에 숯돌에 칼을 가는 손이 될 테지요. 이 손으로 연필을 쥐어 글을 쓰고, 크레파스를 쥐어 그림을 그리며, 책을 쥐어 이야기를 읽습니다.


  살림을 꾸리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풀바람 마시고 흙내음 맡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냇물에 담그는 손으로 책을 읽는 한편 반가운 동무를 부르면서 흔드는 손으로 책을 읽습니다. 두 손 따사롭게 돌보면서 책을 쥡니다. 두 손 넉넉하게 보듬으면서 책을 만집니다. 두 손 즐겁게 맞잡으면서 책을 쓰다듬습니다. 4346.10.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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