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글을 손으로 쓰지 발로 쓰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글은 발로 쓴다고도 말한다. 손을 쓸 수 없다면 발을 써서 글을 적바림할 만하리라 느끼는데,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발품을 파는 만큼 느끼고 배운다. 몸품을 파는 만큼 겪으며 익힌다. 마음을 쓰고 생각을 기울이며 사랑을 들이는 만큼 헤아리면서 맞아들인다. 곧, 발뿐 아니라 몸으로도 쓰는 글이라 말할 수 있고, 사랑으로 쓰는 글이라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금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이야기한다.

 

  발품과 몸품, 마음과 생각과 사랑, 이 모두를 아우르고 엮어서 ‘손으로 쓰는’ 글이라고 느낀다. 누군가는 발로도 칼질을 하며 밥을 차릴 수 있으리라. 그래도 나는 ‘손으로 도마질을 하며 밥을 차려 내놓는다’고 이야기한다. 온몸으로 사랑을 들여 차리는 밥은 늘 따사로운 손길로 마무리를 지어 내놓는다.


  또박또박 손으로 글을 쓴다. 빈 종이에 볼펜을 꾹꾹 눌러 손으로 글을 쓴다. 곧 다른 빈 종이 하나를 꺼내 천천히 정갈히 옮겨서 적는다. 셈을 켜서 글판 두들기면 훨씬 빨리 더 많이 쓸 수 있지만, 꼭 종이 크기만큼 손글을 쓴다. 어느덧 글은 ‘글’과 ‘손글’로 나뉜다. 그런데 먼먼 옛날부터 ‘글을 쓴다’고 하면 손으로 쓰는 글이었다. 앞으로도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손으로 쓰는 글이 되리라. 손으로 짓는 밥, 손으로 비비는 빨래, 손으로 기우는 옷, 손으로 베는 나락, 손으로 뜯는 풀, 손으로 씻기고 안으며 쓰다듬는 아이들, 손으로 일구는 보금자리, 손으로 떠서 마시는 물, 여기에 손으로 쓰는 글. 4346.10.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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