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과 어떤 사람

 


  야구선수 손아섭은 무척 젊다 할 만하다. 그러나 마흔 줄을 코앞에 둔 내가 보기로 젊다 싶은 나이일 테지만, 내가 열아홉 살이나 스무 살 나이라 한다면, ‘꽤 나이든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 군대에 들어가기 앞서 ‘군대를 마친 사내’를 보면 고작 스물세 살이나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었더라도 ‘아저씨’로만 보였다. 그런데, 마흔 줄을 코앞에 놓고 스물너덧 사내를 보면, 또 서른을 조금 넘긴 사람들을 보면, ‘참 젊은 나이네’ 하고 생각한다. 거꾸로, 내가 쉰이나 예순 줄에 접어들면, 마흔 줄 나이인 사람을 바라보면서 ‘젊고 한창인 나이로군’ 하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느낀다.


  야구선수 손아섭을 만난 적 없기에 이녁이 어떻게 살아가며 야구선수 삶을 잇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야구선수 손아섭이 언젠가 어느 신문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녁보다 어린 야구선수를 보면서 많이 배운다’고 말한 적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서 많이 놀랐다. 그래, 이런 마음으로 씩씩하게 뛰는 야구선수가 있구나, 이런 넋으로 즐겁게 삶을 짓는 사람이 내 둘레에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반갑더라.


  나는 늘 내 둘레 사람들한테서 배운다. 나이든 사람한테서는 그 나이든 사람 모습에서 배우고, 나어린 사람한테서는 그 나어린 사람 모습에서 배운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서 많이 배울 만하지 않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서 적게 배울 만하거나 못 배울 만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돌보아 보라. 갓난쟁이를 어르고 달래며 사랑하는 동안 얼마나 깊고 너른 삶과 꿈을 배우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나이값을 놓고 다툼질을 벌인다. 이녁 나이가 한 살이라도 더 많으면 이녁보다 한 살이라도 어리거나 젊은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함부로 말 놓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녁보다 한 살이라도 많거나 늙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나이값 못한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한다. 어쩌라고? 이녁보다 나이가 적어도 안 되고, 나이가 많아도 안 되네? 어쩌라고?


  더 생각해 보면, 나이값을 따지는 사람은 가방끈을 놓고도 따진다.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는지, 이름까지 ‘서울’인 대학교를 나왔는지, 이것저것 놓고 가방끈을 따지고 재기 일쑤이다. 더 나아가면, 은행계좌를 놓고도 사람을 재고 따지는 이 나라요 이 사회이다. 게다가, 이런 짓을 바보스러운 권력자만 저지르지 않는다. 지식인이라는 사람조차, 문학인이라는 사람마저, 예술인이요 문화인이며 ‘어른’이라고 스스로 내세우는 사람까지 잘못을 저지른다.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몸뚱이는 밥을 먹더라도 산 목숨이 아니라고 느낀다. 배우는 사람일 때에는 몸이 아파 자리에 드러누운 채 지내더라도 그야말로 참답게 산 목숨이라고 느낀다. 배워야 산다. 배울 때에 산다. 배워야 사랑한다. 배울 때에 사랑한다. 삶을 읽어야 사랑을 읽을 수 있고, 삶과 사랑을 읽을 때에 사람을 읽을 수 있으며, 삶과 사랑과 사람을 읽으면서 시나브로 책을 읽을 수 있다. 4346.10.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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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방 가운데 하나인 네이버블로그에서 어떤 분이 '내 나이'를 들먹이며 비아냥거리고 해코지하는 댓글을 여러 차례 썼다. 나이 마흔(올해 서른아홉)에도 '나이가 어리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니, 내 나이가 여든 살쯤 되어야, 한국 사회에서 걱정없이 글을 쓸 만할까 무척 궁금하다. 그러나, 이런 분이 갑작스레 나타나서 비아냥과 해코지를 일삼아 준 탓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여러모로 고마우면서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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