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한글날 앞두고 어느 라디오 방송국 작가한테서 전화 한 통 온다. 한글날에 나한테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은가 보다. 방송작가는 이녁이 생각하는 대로 내가 ‘전화 인터뷰’로 말해 주기를 바라는 낌새이다. 그러나, 나는 ‘꼭둑각시’나 ‘허수아비’가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들려주어야 한다면 내 생각을 들려주어야지, 방송작가 생각을 읊을 수 없다. 방송작가 생각을 읊어야 한다면, 방송작가 혼자서 각본 쓰고 스스로 해설하고 방송을 이끌 노릇이다.
방송작가한테 한글날과 얽힌 이야기에다가, 한글이라는 글자 아닌 한국말이라는 속살을 들여다보아야 참답게 한글날을 기릴 뿐 아니라, 한국사람으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녁 방송작가가 어느 때에 갑자기 전화를 끊는다. 내 이야기가 듣기 싫었나? 그래, 잘 되었다. 나도 이런 방송작가하고 전화로 떠들 겨를이 없다. 아이들 얼굴을 보아야 하고, 집살림 거느려야 하며, 서재도서관 손질하는 한편, 내 삶이야기를 글로 써야 한다.
책상맡에서 취재를 하고 각본을 쓰는 방송작가는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4346.10.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