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서
세 살(이라지만 아직 스물아홉 달)인 작은아이는 보름쯤 앞서까지만 해도, 서재도서관 가는 길목 풀밭을 혼자 안 걷겠다고 앙앙 울어댔다. 그런데 이제는 풀밭길 거닐며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날 뿐 아니라, 때로는 일부러 풀밭길에서 넘어지며 까르르 웃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아직 낯익지 않았겠지만, 아버지와 누나하고 거의 날마다 이 풀밭길 오가면서 비로소 느꼈겠지. 누나는 이 풀밭길을 아주 씩씩하게 다니며 재미나게 노는데, 아버지 품에 안겨 풀밭길을 가로지르면 어쩐지 재미없잖아.
나도 어릴 적에 이를 또렷하게 느꼈다. 국민학교 적에 흙운동장에서 넘어지면 무릎이나 이마나 팔꿈치까 까지거나 긁히며 조금 피가 나기도 하지만, 피가 안 나고 긁히기만 하기 일쑤이다. 이와 달리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땅바닥에 넘어지거나 자빠지면 되게 아플 뿐 아니라 곧바로 피가 철철 솟는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흙길에서 넘어지면 거의 안 다치지만, 자전거를 달리다가 아스팔트길에서 넘어지면 몹시 크게 다칠 뿐 아니라, 자동차한테 받칠 수도 있다.
풀을 잊은 사람들은 풀내음이 우리 목숨을 어떻게 살리는가를 함께 잊는다. 풀과 등을 진 사람들은 풀빛이 우리 넋을 어떻게 살찌우는가를 함께 등지고 만다.
사람들 누구나 풀밭에서 일하고 놀며 어울릴 수 있기를 빈다. 사람들 누구나 풀밭에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고 등허리를 펴면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음결을 파랗고 푸르게 가꿀 수 있기를 빈다. 4346.10.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