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떼 책읽기

 


  여름이 저물고 가을이 접어들면서 여름철새 모두 따스한 나라로 떠난다. 전남 고흥은 아직도 가을볕이 뜨끈뜨끈하지만, 들판에서는 여름철새를 찾아볼 수 없다. 낮에는 제법 덥구나 싶기도 하지만, 새벽과 밤에는 퍽 쌀쌀하니, 여름철새는 이런 날씨를 견딜 수 없으리라. 여름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 따순 나라를 바라며 떠났구나 싶다.


  여름철새 없이 조용한 들판에 참새떼 흐드러진다. 여름철새 많던 때에는 참새가 그닥 눈에 뜨이지 않더니, 여름철새 날갯짓 사라지니 참새떼 도드라지게 보인다. 이제는 온통 너희 누리가 되었을까. 너희는 추운 겨울에도 이곳에서 겨울나기를 할 텐데, 겨울잠 안 자고 겨울나기를 잘 할 수 있을까.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를 겨울나기 하면서 살았을 테니, 올겨울도 거뜬히 날 수 있을까.


  그런데, 참새들아, 너희도 알 텐데, 사람들이 바꾸어 놓는 시골과 숲과 멧자락과 냇물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니. 하루아침에 냇물이 망가지고, 하루아침에 골짜기가 무너지며, 하루아침에 시골마을에 고속도로며 고속철도며 골프장이며 공장이며 놓인다. 저기 밀양에서는 우람한 송전탑을 또 몰래 뚝딱뚝딱 때려짓는다더라. 이를 어쩌면 좋으냐. 사람들은 사람 스스로도 살 만하지 못한 터가 되도록 망가뜨리고 부수고 법석을 피우는데, 너희들 참새는 이런 데에서 왜 텃새로 살아가느냐. 사람 곁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느냐. 이 나라에 너희 앞날이 맑거나 밝게 보이느냐. 사람들도 이 나라에서 스스로 빛을 잃는다고 말하는데, 너희는 어떻게 살아가려느냐. 너희는 올해 이 시골마을 농약바람에서 용케 살아남았구나.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내빼는 참새떼야, 너희는 무엇이 무섭니. 너희는 농약 잔뜩 뿌린 쌀알을 쪼아먹고도 속이 괜찮니.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논자락이며 논둑이며 밭자락이며 밭둑이며 온통 농약투성이로 만드는데, 너희들이 느긋하게 깃을 들이고 서로 나란히 살을 부비며 쉴 만한 보금자리는 있니. 4346.10.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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