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책

 


  헌책방에서는 연필을 써서 책값 적는 곳이 꽤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을 숫자로 적어 넣지요. 단골은 연필 숫자를 읽으며 책값을 어림합니다. 단골 아닌 책손은 아직 숫자읽기를 못해서 책값을 어림하지 못하기 일쑤이지만, 한 번 두 번 드나든 뒤에는 숫자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종이로 만들고, 종이는 나무로 만듭니다. 연필은 나무로 만듭니다. 책도 연필도 나무로 만듭니다. 책방 책시렁은 으레 나무로 짭니다. 나무로 짠 책시렁에 둘 나무로 만든 책에 나무로 만든 연필로 책값을 적어 넣습니다. 책값을 적어 넣는 손은 숲에서 자란 풀밥을 먹으며 기운을 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나무를 읽겠지요. 종이로 바뀌었다가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를 읽어요. 연필로 거듭난 나무를 읽어요. 풀밥 먹고 기운내어 일하는 책지기 손길을 읽어요. 4346.10.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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