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값을 들여서 읽을 만하지 않은 책은, 어쩌면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되는 책일 수 있어요. 값을 톡톡히 들여서 장만하는 책은, 틀림없이 스스로한테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책일 수 있어요.


  어떤 책이든 값을 옳게 치르고 장만할 적에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새책으로 장만하거나 헌책으로 마련하거나, 제값을 고스란히 치르려고 마음을 먹을 때에, 책빛이 내 삶에 아름답게 드리운다고 느껴요.


  책값을 좀 비싸게 매겼구나 싶은 책을 으레 만나곤 하는데, 좀 비싸다 싶은 책값에도 모두 까닭이 있을 테지요. 새책 값으로 비싸다면 이 책이 헌책방에 들어올 날을 기다립니다. 헌책 값으로도 비싸다면, 이 책을 조금 더 싸게 팔 헌책방에 이 책이 들어올 날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린다 해서 이 책이 ‘더 값싸게’ 나한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책값이 싸다고 해서 책을 잔뜩 장만할 수 없어요. 책을 읽을 만한 마음그릇이 될 적에 책을 장만해서 읽을 수 있어요. 돈이 많다 해서 책을 만 권이나 십만 권이나 백만 권 한꺼번에 장만한들, 이 책들을 다 읽지도 못하지만, 애써 다 읽어내더라도 가슴에 남을 이야기가 없어요.


  읽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책값을 즐겁게 치르면서 기쁘게 가슴에 품고 읽으면 아름답습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입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값이 싸니까 장만해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마음을 덥히고, 마음을 보듬으며, 마음을 아끼고 싶기에, 아름다운 마음밥이 되는 책을 흐뭇하게 장만해서 읽습니다. 책값으로 쓴 돈은 머잖아 씩씩하게 새로 벌 수 있습니다. 책값이 아쉬워 주머니를 닫으면, 앞으로도 새 돈을 벌지 못합니다. 4346.9.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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