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읽는 책

 


  새책방에는 오래된 책이 없습니다. 도서관에는 오래된 책이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두는 곳이지 ‘오래된 책’을 두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전 책을 알뜰히 여겨 차곡차곡 건사하는 도서관이 있으나, 모든 도서관이 오래되거나 묵은 책을 챙기거나 돌보지는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을 만납니다. 그렇다고 헌책방에 오래된 책만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헌책방에 들어온 오래된 책이 다시금 오래도록 빛을 못 본 채 쌓일 수 없습니다. 오래된 책만 있고 책이 흐르지 않으면, 헌책방지기는 책방살림을 꾸리지 못해요. 오래된 책이든 새로 나온 책이든, 사고팔리면서 돈이 돌아야 헌책방 일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새책방에서 장만한 새로 나온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갖춘 책을 읽으며, 헌책방에서 돌고 도는 책을 읽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새로 나온 책입니다. 묵은 책은 묵은 책입니다. 새로 나왔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지는 않습니다. 묵은 책이니 묵은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느 책을 마주하더라도 처음 만나는 책이고, 새삼스레 되새기는 이야기입니다. 이제껏 살아온 내 하루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내 길을 헤아립니다.


  지나간 책들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햇수로 치면 한참 지나간 책들이지만, 이 책들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몇 년도에 나온 책인지 살피지 않습니다. 그저 이 책에 깃든 줄거리를 따라가며 이 책에 서린 이야기를 가슴으로 삭힙니다. 갓 나온 책들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햇수로 치면 보송보송하다 할 만한 책들인데, 이 책들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며칠 앞서 나온 책인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저 이 책에 담긴 줄거리를 좇으며 이 책에 감도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책을 읽습니다. 햇수나 연도 아닌 책을 읽습니다. 값이나 돈셈 아닌 책을 읽습니다. 작가나 출판사 이름값 아닌 책을 읽습니다.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아닌 책을 읽습니다. 더 파고들면 ‘책’을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이라고 하는 ‘종이그릇’에 담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이라는 종이그릇에 담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온 나날입니다. 그러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람이 살아온 나날’을 읽는 셈이요, 내 이웃과 동무가 누리는 ‘삶’을 책으로 만난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삶을 읽기에 책입니다. 사랑과 꿈이 서린 삶을 읽으니 책읽기입니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지나간 책’이나 ‘묵은 책’, 다시 말하자면, 헌책방 헌책은 어떤 책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 헌책은 ‘헌 책’으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헐거나 낡거나 묵거나 지나간 책이라기보다 ‘오래도록 읽을’ 수 있는 책들이지 싶습니다. 헌책방으로 책마실을 떠나는 이들은 오래도록 읽고 싶은 책을 찾으려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오늘만 읽을 책이 아니라 앞으로도 읽을 책을 살피고 싶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어제와 오늘과 모레를 잇는 책을 헌책방마실을 하며 만나고 싶은 마음이지 싶어요.


  삶은 하루에 하루가 모여 이루어집니다. 이야기는 사랑에 사랑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책은 삶에 삶이 어우러져 이루어집니다. 4346.9.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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