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바라보는 눈빛

 


  꽃바구니에 꽃을 담을 수 있습니다. 꽃그릇에 꽃을 꽂을 수 있습니다. 꽃바구니는 매우 값진 것으로 엮을 수 있고, 꽃그릇은 무척 비싼 것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책은 비단으로 감싸서 선물할 수 있습니다. 튼튼하고 향긋한 나무로 짠 책꽂이에 책을 꽂을 수 있고, 합판조각으로 만든 값싼 책꽂이에 책을 꽂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방바닥이나 책상에 책탑을 쌓을 수 있어요.


  바구니에 담겨도 꽃이고 꽃그릇에 꽂혀도 꽃이지만, 들판에서 자라도 꽃이요, 나무그늘 밑에서 피어도 꽃입니다. 도서관에 꽂혀도 책이고, 새책방에 꽂혀도 책이지만, 헌책방에 꽂혀도 책입니다. 책은 언제나 책입니다. 쇳가루 마시고 기름 먹으며 일한 손으로 쥐어도 책이며, 아파 드러누운 자리에서 힘겨이 쥐어도 책입니다. 학교에서도 책이고, 집에서도 책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똑같은 책을 손에 쥡니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은 아닙니다. 어떤 넋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입니다.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바뀌는 책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즐거이 알아보고 읽으면 바뀌는 책입니다. 책은 열흘을 기다려 주기도 하고, 열 해를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책은 닷새를 기다려 주기도 하고, 다섯 달을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스무 해나 마흔 해를 기다리는 책이 있어요. 눈빛을 밝혀 읽으려는 사람이 있을 때에 향긋한 종이내음 베푸는 책입니다. 눈빛을 따사롭게 비추는 사람한테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책입니다. 마음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책빛을 북돋웁니다. 마음에서 따사로운 사랑 샘솟는 사람이 책사랑을 퍼뜨립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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