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서는 헌책방

 


  아이와 함께 헌책방에 선다. 아이가 있기에 아이와 함께 헌책방마실을 한다. 아이가 없던 지난날에는 혼자 헌책방에 섰다. 혼자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그예 시간 가는 줄 잊고 헌책방에서 책에 파묻혀 지냈다. 오늘 이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은 다음에 이곳에 다시 찾아올 적에 다른 책손이 장만해서 못 보기 마련이라 느끼기에, 내 앞에 나타나는 책들을 살피고 읽느라 해가 꼴딱 넘어가도록 책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 삶을 마주했다.


  아이는 헌책방에서 책을 만지작거리기도 하지만, 천장까지 닿는 책꽂이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책 사잇길을 마음껏 걷는다.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혼자서 숨바꼭질을 하고, 동생하고 술래잡기를 한다. 큰아이는 저 혼자 아버지하고 헌책방마실 하던 날에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큰아이는 제 동생이 제법 자라 저랑 둘이서 헌책방 골마루를 달리며 놀 수 있는 요즈음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는 머잖아 한글을 깨치겠지. 한글을 깨치면서 이 책 저 책 들추겠지. 한글을 깨칠 뿐 아니라, 글을 익히고 난 뒤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들려주는 오랜 삶빛을 책에서 만나겠지.


  아직 한글을 다 모르니, 이동안에는 나무를 읽고 풀을 읽으며 꽃을 읽으렴. 아직 글을 제대로 모르니, 이동안에는 하늘을 읽고 해를 읽으며 별을 읽으렴. 바람과 흙을 읽고, 비와 내를 읽으렴. 구름과 숲을 읽고, 풀벌레와 제비를 읽으렴.


  우리가 읽을 이야기는 늘 우리 둘레에 있단다. 우리가 아로새길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단다. 책에서도 얼마든지 길을 찾고, 책 아닌 우리 삶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다. 길은 어디에나 있는데, 볼 눈이 있을 때에 보고, 볼 눈이 없을 때에 못 본단다. 코앞에 내가 바라는 책이 꽂힌 줄 모르는 채 지나칠 수 있고, 저 먼 책시렁 어딘가에 내가 바라는 책이 있다고 마음으로 느껴 두근두근 설레는 가슴으로 그 책시렁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마음을 열면 마음으로 이야기가 스며들지. 생각을 열면 머리와 온몸으로 노래가 샘솟지. 사랑을 열면 넋과 얼은 고운 빛으로 가득하지. 내 마음속에 빛샘이 있어 책을 읽을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사랑밭이 있어 책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겁게 씨앗으로 심을 수 있다. 4346.9.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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