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꾸러기 쏘피
세귀르 백작부인 지음, 원용옥 옮김 / 여름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 이 느낌글 쓸 수 있도록 책을 선물해 주신 보슬비 님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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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38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
― 말썽꾸러기 쏘피
 세귀르 백작 부인 글
 오라스 꺄스뗄리 그림
 원용옥 옮김
 여름나무 펴냄, 2005.3.5.

 


  신나게 놀며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땀흘려 신나게 일하는 즐거움을 한껏 누립니다. 어릴 적부터 신나게 놀며 자라 어른이 된 사람은, 이녁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 재미나게 놀면서 누리는 즐거움을 물려줍니다. 손발가락을 놀리고 온몸을 놀리면서 자랄 적에 튼튼합니다. 콩콩 뛰고 폴짝폴짝 뛸 적에 씩씩합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나비와 함께 날듯이 내달릴 적에 야무집니다.


  제대로 놀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책상맡에서 주어진 일감을 맡기는 하지만, 스스로 슬기롭게 생각을 빛내며 아름답게 일하지는 못합니다. 스스로 온몸 놀리며 자라지 못한 탓에, 둘레 사람들 삶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스스로 온몸 움직여 놀지 않은 버릇이 박혔기에, 교통 정책이나 문화 정책이나 사회 정책이나 경제 정책 모두 재미없을 뿐더러, 이웃을 넓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동무네 집을 두루 다니면서 놀 줄 알아야 합니다. 냇물에서 물장구치고, 숲을 쏘다니며, 바다와 들판을 시원스레 가르며 놀 줄 알아야 합니다. 흙을 만지고, 나무막대기를 주으며, 돌을 옮기면서 놀 줄 알아야 합니다. 나무를 타고, 풀을 꺾으며, 꽃을 쓰다듬으며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숙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하려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실컷 놀고 기쁘게 웃으려고 이곳에 태어납니다. 어린이집에 가거나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들어가려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꿈을 먹고 자라려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서울로 가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면 재미난 삶 될까요. 의사나 판사나 뭣뭣이 되면 삶이 즐거울까요.


  동무와 놀고 이웃과 사랑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아름답습니다. 동무와 어깨를 겯고 이웃과 사랑을 나눌 때에 웃음꽃이 핍니다.


.. “하지만 햇볕을 받으면 말랑말랑해진단다. 그러면 인형이 망가질 거야. 난 분명히 일러 줬다.” 쏘피는 엄마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형을 뜨거운 태양 아래 눕혀 놓았다 … 엄마가 쏘피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그만 해. 자꾸 이것저것 궁리하지 말고 조용히 해. 다칠지 안 다칠지는 너보다 엄마가 더 잘 알아. 절대로 혼자서 안뜰에 가면 안 돼.” 쏘피는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뾰로통한 표정이었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래도 가야지. 재미있으니까 갈 거야.” ..  (12, 25쪽)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주차장은 그만 닦아야 합니다. 자동차가 넘친다면, 외려 주차장을 줄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넘치니, 이 넘치는 자동차가 찻길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는 정책을 꾀해야 옳습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주차장을 없애고 놀이터와 쉼터로 바꾸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자리를 마련하고, 어른들이 쉴 터를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은 교사들 주차장으로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박으면 아이들은 그나마 흙을 만질 땅조차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공부만 시키니, 운동장에서 개구지게 뛰놀지도 못합니다. 운동장이 넓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를 하는 몇몇 아이들 있으면, 그나마 시원스레 놀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학교 운동장에서만 놀아야 하지 않아요. 어느 동네에서나 놀 수 있어야 해요.


  시내나 읍내나 면내 한쪽에 반드시 주차장 아닌 놀이터와 쉼터가 있어야 합니다. 시골마을 한쪽에도 빈터가 있어야 합니다. 빈터에서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놀 수 있어야 합니다. 구슬을 치건 돌을 치건 막대기를 치건, 아이들이 서로서로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즐겁게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놀이기구나 저런 놀이시설이 꼭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무 놀이기구 없어도 되고, 어떤 놀이시설 없어도 됩니다. 빈터면 넉넉합니다. 빈터에는 나무그늘 드리워야 하고, 풀밭이 있어야 합니다. 곁에 냇물이 맑게 흐르면 더 좋습니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으면 아주 좋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도 공부도 학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푸른 마음 되어 신나게 놀며 하루를 누릴 수 있어야 튼튼하고 참답게 클 수 있습니다.


.. “아가씨, 말을 안 들었으니 매를 맞아야 마땅해요. 하지만 고마우신 하느님이 이미 아가씨한테 이렇게 혼을 내셨어요. 그러니까 내가 내릴 벌은 아가씨가 마을 축제 때 쓰려고 지갑에 넣어둔 동전 5프랑으로 하녀 아줌마의 새 앞치마를 사도록 하는 거예요.” … 엄마들은 그 방을 나왔다. 하지만 쏘피가 발명한 우스꽝스런 식사 때문에 자신들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만 남았다. 뽈과 쏘피는 싸운 것이 부끄러워서 서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까미유와 마들렌이 그 둘에게 입맞춤을 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또 서로 화해를 시키려고 했다 ..  (28, 101쪽)


  놀이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누구한테서 배운 노래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노래가 샘솟습니다. 가락이 샘솟고 말이 샘솟아요. 노래란, 어떤 가락이나 말을 누구한테서 배워 똑같이 부를 때에 노래가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야기를 제 가락에 맞추어 제 말을 거침없이 터뜨릴 적에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는 노래에는 푸른 숨결이 깃듭니다. 언니가 동생한테 놀이를 물려줍니다. 오빠가 동생한테 놀이를 이어줍니다. 아이들은 서로 놀이를 물려주고, 노래를 가르칩니다. 천천히 천천히 이루어지는 놀이와 노래입니다. 스스로 씩씩하고 놀고 푸르게 자라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스스로 일을 찾고 스스로 즐겁게 일하며 스스로 기쁘게 노래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이루어지며 이어진 ‘일노래’란 바로 어릴 적부터 신나게 놀며 ‘놀이노래’ 부르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부른 노래입니다.


  즐겁게 놀아야 즐겁게 일하지요. 놀지 못한 사람이 일하지 못해요. 노래하며 놀아야지요. 노래하지 놀지 못한 사람이 노래하며 일하지 못해요.


  대학생들을 보셔요. 놀 줄 아는 대학생이란 없어요. 술 마시고 담배 태우고 짝짓기를 하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정작 스무 살 싱그러운 나이를 한껏 빛내는 놀이란 한 가지조차 없어요. 스스로 놀이를 빚지 못하고, 스스로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모두 텔레비전이나 책이나 학교나 둘레 어른한테서 기웃거린 빈 껍데기 물질문명만 가득합니다. 오늘날 어른들 스스로 놀 줄 모르고 놀지 않고 노래할 줄 모르며 노래하지 않으니, 이 젊은이들은 놀거나 노래하는 기쁨을 모릅니다. 이 젊은이들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논 적이 없어요. 오직 시험공부에만 파묻힌 채 자랐어요. 주민등록증은 있되 어른이 아닙니다. 술담배는 거리낌없이 할 테지만, 자유도 꿈도 창조도 생각도 일구지 못합니다.


.. 마음씨 고운 뽈도 역시 속상했다. 어떻게 하면 쏘피가 야단맞지 않을까만 생각했다. “가시덤불에서 넘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잠깐만, 두고 봐.” 뽈이 말했다. 뽈은 달려나갔고 쏘피도 뒤따라갔다. 아이들은 집 근처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뽈이 호랑가시나무 덤불숲 쪽으로 향하더니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안에서 잎사귀들의 뾰족한 끝에 얼굴이 긁히고 상처가 나도록 몸을 굴렸다. 그리고 일어섰는데 그전보다 훨씬 더 긁혀 있었다 … “우리 착한 뽈, 너는 정말 착해! 그러면 일부러 넘어졌단 말이야? 많이 아팠을 텐데.” 쏘피가 뽈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니야. 저렇게 낮은 의자에서 넘어졌는데 어떻게 아플 수가 있겠어. 이제 우리 다시 친구가 되었으니 놀러 가자.” ..  (115, 130쪽)


  노는 아이들은 살결이 까무잡잡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뱃살이 나올 틈이 없습니다. 노는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별과 달과 해와 구름을 늘 만납니다. 노는 아이들은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물맛과 밥맛을 압니다. 노는 아이들은 여린 동무를 아끼고, 어깨동무를 즐깁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놀기에 튼튼합니다. 튼튼하게 자랐으니 튼튼하게 일하는 어른이 됩니다. 온몸이 골고루 튼튼히 자랐으니 야무지게 일할 줄 아는 어른이 됩니다. 눈빛이 맑으니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착하고 참다운 일거리를 찾고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별과 달과 해와 구름을 읽을 줄 알기에, 밥과 옷과 집을 정갈하며 곱게 건사합니다. 꽃과 풀과 나무를 사랑하듯이 이웃과 동무를 사랑하지요. 숲을 돌보고 마을을 보살핍니다. 물맛과 밥맛을 알기에 흙을 살찌우고 기쁨 어린 씨앗을 환하게 웃으면서 심습니다. 여린 동무를 아끼면서 이웃 누구나 반깁니다. 어깨동무를 즐기기에 두레와 품앗이와 울력을 힘과 슬기를 모아 이룹니다.


  놀이는 삶입니다. 삶은 놀이입니다. 놀이는 일이 되고, 일은 어느새 놀이와 같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길은 일놀이가 한동아리 되어 흐르는 웃음꽃과 땀방울에 있습니다. 사랑을 빛내는 착한 꿈은 일놀이 누리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에 있습니다.


.. “가엾은 쏘피. 네가 도둑질을 한 사실을 잊게 할 방법이 뭔지 알아? 그건 사람들이 앞으로는 너를 의심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직해지는 거야.” 뽈이 말했다 … “만약 옷핀에 대해서 말하면 야단맞을 거야. 그리고 당나귀를 뺏어 버리실 거야.” “내가 보기엔, 항상 사실대로 말하는 게 더 나아. 네가 뭔가를 이모님한테 숨기려고 할 때마다 이모님은 금방 아셨잖아. 그리고 네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벌을 조금 받았을 텐데, 항상 더 심한 벌을 받곤 했잖아.” ..  (166, 183쪽)


  세귀르 백작 부인이 글을 쓰고 오라스 꺄스뗄리 님이 그림을 그린 《말썽꾸러기 쏘피》(여름나무,2005)를 읽습니다. 무척 오래된 동화책입니다. 서양나라에서 이백 해쯤 앞서 아이들이 어떻게 놀며 자랐나 하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는 글입니다. 개구지게 놀던 말괄량이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어른들은 쏘피를 가리켜 ‘말썽꾸러기’라 말하는데, 어린 쏘피로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하거나 겪고 싶을 뿐입니다. 어른들은 예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겪으며 쏘피한테 ‘이렇게 하지 말라’라든지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데, 어린 쏘피는 스스로 부대끼면서 하나하나 느끼고 싶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쏘피를 낳아 돌본 어머니도 이녁이 어릴 적에는 쏘피처럼 놀았으리라 생각해요. 모두들 어릴 적에는 쏘피처럼 개구지게 놀았으나, 어른이 되면서 얌전을 떨고 아이들 나무라는 모습이 될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리거나 놀면서 자랍니다. 그런데, 때로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쏘피하고 함께 놀면서 놀이를 물려줄 수 있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릴 적 놀며 부른 노래를 쏘피한테 가르칠 수 있어요. 이것은 하지 말고 저것은 하라는 틀을 넘어, 새롭게 놀이를 함께 즐기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인걸요. 아이답게 이런 놀이를 하고 싶은걸요. 아이스럽게 저런 장난을 치고 싶은걸요.

  큰소리로 까르르 웃는 아이더러 조용히 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온몸이 자라느라 온몸이 간지러운 아이들은 펄쩍 뛰고 폴짝 납니다. 이 아이들더러 얌전히 있으라거나 다소곳하게 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흙놀이나 모래놀이 하고픈 아이들을 말리면 안 됩니다. 흙놀이와 모래놀이 실컷 즐기도록 하고는, 다 놀고 나서 옷을 털고 손을 씻도록 이끌면 됩니다. 물놀이 하고픈 아이한테 갈아입을 옷 챙겨 주면 됩니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아이한테 숲속 멧새 노래 듣기를 시키고, 풀벌레 노래잔치에 귀를 기울이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아이한테 씨앗을 주고 스스로 심어 보살피도록 하면 됩니다. 바느질을 보여주면서 함께 옷을 기우면 됩니다. 설거지도 걸레질도 같이 하면 돼요. 어린 동생 달래며 재우는 일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요.


  놀면서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공부하거나 숙제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놀면서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학교를 다니며 사랑스레 자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놀고 어깨동무하면서 사랑과 꿈을 키우는 아이들입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을 거머쥔대서 아이들 마음속에서 꿈이나 사랑이 샘솟지 않습니다.


  삶터란 일터이면서 놀이터입니다. 놀이터란 일터요 삶터이면서 사랑터입니다. 일터란 삶터이자 놀이터요 사랑터인 한편 꿈터입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싱그러이 빛나는 숲집입니다. 4346.9.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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