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는 곳

 


  책방이 크면 책을 많이 갖다 놓을 수 있습니다. 책방이 작으면 책을 알뜰히 갖다 놓습니다. 책방이 클 적에는 온갖 갈래 온갖 책을 골고루 갖출 수 있습니다. 책방이 작을 적에는 꼭 이곳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책을 살뜰히 추려서 갖춥니다. 자리를 넓게 쓸 수 있는 도서관에서는 온누리 수많은 책을 잔뜩 그러모을 수 있습니다. 마을에 조그맣게 여는 도서관에서는 마을사람한테 꼭 읽히거나 보여주고픈 책을 촘촘히 골라서 그러모읍니다.


  내 주머니에 살림돈 백만 원 있을 적에는 백만 원어치 책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주머니에 살림돈 십만 원 있을 적에는 십만 원어치 책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주머니에 살림돈 만 원 있을 적에는 만 원어치 책을 사기에도 빠듯하지만, 살 수 없는 책은 눈으로만 살피고 꼭 사야겠다고 여기는 책만 주머니를 헤아려 한두 권 뽑습니다.


  아이들 보살피는 어버이라면, 어버이인 내가 읽을 책에 앞서 아이들한테 읽히고픈 책을 먼저 고릅니다. 어버이인 내가 읽고픈 책하고 아이한테 읽히고픈 책이 함께 보일 적에는, 주머니에 따라 으레 아이 책을 먼저 집어듭니다.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두 가지 책을 넉넉히 고르겠지요.


  오늘 내 주머니에 따라 장만하는 책과 장만하지 못하는 책은 어느 쪽이 더 좋거나 낫다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늘 내 삶에 맞춘 책일 뿐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책이라 하더라도 주머니가 가벼워 침만 흘리는 책이 있어요. 참으로 갖고 싶은 책이라 하더라도 주머니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만 담는 책이 있어요. 주머니는 넉넉하더라도 집이 작으면 모든 책을 다 장만해서 집에 두지 못해요. 책에 앞서 집부터 넉넉히 다스려야 합니다.


  책방마실을 합니다. 커다란 책방으로도 마실을 하고, 조그마한 책방으로도 마실을 합니다. 어느 책방으로든 아름다운 책을 만나고 싶다는 꿈을 꾸며 마실을 합니다. 크기가 작은 책방에서는 책시렁 한켠 책탑 뒷자락까지 빠짐없이 살핍니다. 크기가 넓은 책방에서는 널따란 골마루와 책시렁을 차근차근 두루 살핍니다.


  열 가지 책을 읽으며 열 가지 눈길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책을 열 번 읽으며 열 가지 눈썰미를 건사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길을 틉니다. 책을 읽는 동안 눈썰미를 키웁니다. 책을 읽으면서 눈빛을 밝힙니다. 책을 읽는 동안 눈결이 거듭납니다. 책을 보는 곳은 내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4346.9.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