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즈막히 부르는 책
새책방에서 책등이나 책겉이 안 보이도록 겹겹이 쌓을 적에, 아래쪽에 깔린 책이 무엇인가 하고 들여다보거나 살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책방에서 책을 겹겹이 쌓는다 하면, 잘 팔리는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골라서 사기를 바라는 마음이리라. 또한, 새책방에서는 몇 가지 책을 더 많은 사람들한테 팔 수 있을 때에 한결 손쉽게 책방살림 꾸릴 만하리라 본다.
헌책방에서 책등이나 책겉이 잘 보이도록 책을 꽂으면 한결 낫겠지만, 헌책은 한꺼번에 잔뜩 들어오기도 하고, 애써 들여놓았으나 아직 알아보는 책손이 없어 오래도록 책손 한 사람 기다리며 잠자는 책들이 있다. 헌책방 책손은 슥 스쳐서 지나가는 눈길로 책을 마주할 수 없다. 겹겹이 쌓인 책탑을 살피고, 아래쪽에 깔린 책까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한다.
새책방 찾는 책손이 잔뜩 쌓여 널리 잘 팔리기를 바라는 책 말고, 책꽂이에 꼭 한 권만 꽂힌 책을 찾아서 장만한다면, 새책방 책꽂이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때에도 몇 가지 책을 눈에 아주 잘 뜨이는 어느 자리에 잔뜩 쌓을까. 헌책방 찾는 책손처럼 골마루 구석구석 샅샅이 살피듯, 새책방 찾는 책손들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이 책꽂이 구석구석 뻗는다면, 조그마한 마을 조그마한 책방 천천히 살아나리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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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히 부르는 책을 알아보는 사람이 새삼스레 하나둘 늘어날 적에 책방이 살아난다. 조용히 책손을 기다리는 책을 깨우는 사람이 새롭게 하나둘 생겨날 적에 책방이 살고, 책마을이 이루어진다. 한 가지 책이 백만 권 팔릴 적에는 책방도 출판사도 책마을도 태어나지 못한다. 백 가지 책이 만 권씩 팔리거나 천 가지 책이 천 권씩 팔릴 적에 비로소 책방과 출판사와 책마을 모두 아름답게 살아난다. 4346.9.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