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8.29.
 : 제비야, 방아깨비야

 


- 어제 우체국에 갔을 때에 등기우편 하나를 못 보냈다. 잘 보려고 잘 챙긴다고 하다가, 그만 집에 두고 안 가져갔다. 오늘 날씨를 보니 낮부터 비가 올 듯하다. 아침 일찍 우체국에 다녀와야겠구나 싶어, 바지런히 아침을 차려 아이들 먹이려는데, 아이들이 배고프다 하면서도 제대로 안 먹고 놀기만 한다. 바삐 등기우편과 소포를 꾸려 나가려 하는데, 이동안 작은아이는 밥을 안 먹고 크레파스를 우물우물 씹는다. 얘야, 크레파스가 그리 맛있니. 너희 먹으라고 밥을 차려 놓았는데, 왜 밥은 안 건드리고 크레파스를 먹니. 큰아이야, 너는 네 동생이 크레파스 씹어먹는데 곁에서 만화책만 들여다보고 동생은 안 돌보아도 되니. 너도 밥은 먹기 싫고 만화책만 보고 싶니.

 

- 바람이 세게 분다. 여름을 떠나보내는 바람일까. 비를 부르는 바람일까. 샛자전거에 탄 큰아이가 “아버지, 저기 구름 좀 봐야. 저기는 하얀 구름이고 저기는 까만 구름이야. 아버지, 구름 좀 보라구요.” 하고 말한다. “그래, 구름 다 봤어.” 어제 퍽 먼 데까지 자전거마실을 다녀온 탓인지, 다리가 아주 무겁다. 몸도 매우 무겁다. 어제는 아이들 태우고 세 시간 즈음 자전거를 탔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면 이튿날은 다리를 느긋하게 쉬어야 하는구나.

 

- 군과 도에서 벌이는 ‘시골마을 상수도사업 공사’가 한창이다. 길을 파헤쳐서 물관 묻은 자리에 어제오늘 새로 아스팔트를 덮는다. 아무렇게나 파헤쳐 놓은 채 여러 달 그대로 두더니, 어제오늘 갑작스레 아스팔트를 덮는다. 이렇게 하루이틀 사이에 덮을 만한 일이라면, 길을 파헤친 뒤 곧바로 아스팔트를 덮었어야 옳다. 그동안 자전거뿐 아니라 자동차도 다니기 힘들게 길을 파헤쳐 놓더니, 딱히 더 공사를 할 것이 없었다면, 마무리를 깔끔히 할 노릇 아닐까. 도시에서 공사를 이렇게 한다면, 신문·방송사에서 취재보도를 하며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웠을 텐데.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아이가 아버지를 또 부른다. “아버지, 저기요. 저기 제비 죽었어요. 제비 풀밭으로 옮겨 주고 가요. 아버지. 그냥 가지 마요.” 요즈음, 제비 몇 마리 차에 치어 죽은 모습을 보았다. 어제그제 이들 제비 주검을 풀밭으로 옮겨 주었다. 오늘 본 제비 주검은 자동차 바퀴에 얼마나 밟혔는지 몸통과 머리가 사라지고 날개만 남은 납작꿍이다. 저 주검은 할 수 없겠거니 생각하며 지나치려는데, 큰아이가 자꾸 부르기에 자전거를 돌린다. 손으로만 떼어내기 힘들어, 나무막대기 하나를 쓴다. 가까스로 떼어낸다. 깃털이 파르르 떨어지며 날린다. 자그마한 깃털 셋을 건사한다. 이 조그마한 깃털로 조그마한 날개를 이루고, 조그마한 몸통을 하늘에 띄워 멀디먼 길을 날아다니는가.

 

- 차에 치이고 밟힌 들짐승이나 새 주검을 풀밭으로 늘 옮기기는 하지만, 시골이라 하더라도 풀밭이 드물다. 조그마한 땅뙈기 하나조차 밭으로 삼으려 하고, 논둑은 죄다 시멘트로 덮인다. 이러니 작은 짐승들 주검을 옮기려면 풀밭을 찾으려고 퍽 헤매야 한다.

 

- “벼리야, 걱정하지 마. 제비는 아름다운 나무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제비 주검을 풀밭으로 옮긴 뒤 몇 미터 앞에서 방아깨비 주검을 본다. 방아깨비는 차에 치이거나 밟히지 않았다. 몸통이 통통히 있다. 살며시 들어 주둥이를 살피니, 농약을 맞아 죽은 티가 난다. 그래, 제비는 자동차에 치이고, 풀벌레는 농약에 스러지는구나. 사람들은 제비도 참새도 그저 다 싫어하지. 사람들은 방아깨비도 메뚜기도 개구리도 그예 모두 미워하지. 그러면, 이 지구별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지구별에 모든 들짐승과 새 사라지고 사람만 남으면 될까. 사람만 남는 지구별에는 미움도 싸움도 전쟁도 없이, 사랑과 평화와 평등이 감돌 수 있을까. “벼리야, 방아깨비는 예쁜 꽃으로 다시 태어난단다.” 부디 예쁜 꽃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 손에 다시 애처롭게 죽지 않기를 빈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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