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설거지와 숫돌

 


  밥을 한다. 국을 끓인다. 반찬을 볶는다. 밥을 차린다. 밥을 먹인다. 설거지를 한다. 칼을 간다. 한 마디씩 적고 보면 몇 초면 넉넉한 집일을 아침저녁으로 한다. 쌀을 불려 밥을 하고, 모든 밥먹기를 마치고서 설거지와 칼갈기까지 마무리지어 한숨을 돌리면, 두어 시간 훌쩍 지나간다. 설거지를 하면서 ‘칼은 나중에 갈까?’ 하고 생각한다. 설거지 마치고 좀 드러누워 허리를 펴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뒤로 미루고 미루면 칼은 무디어지기 마련이요, 다음에 바지런히 밥을 차려야 할 적에 무딘 칼로 잘못 칼을 놀리다가 손가락이 다칠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칼을 덜 갈아 살짝 무딘 나머지 당근을 썰 적에 슬쩍 미끄러져서 손가락을 자를 뻔했다. 아차 하고 느껴 왼손을 잽싸게 빼고 오른손에 불끈 힘을 주어 칼이 도마를 찍지 않도록 막아 손가락이 다치지 않았다. 히유 한숨을 돌리면서 새삼스레 생각한다. 천천히 느긋하게 즐겁게, 늘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진다. 1분 더 빨리 차린들 1분 더 늦게 차린들 달라지지 않는다. 천천히 차려서 천천히 먹으면 된다. 느긋하게 차려서 느긋하게 먹으면 된다. 즐겁게 차려서 즐겁게 먹으면 된다. 설거지도 느긋하게 천천히 즐겁게 하자. 설거지를 모두 끝내고 칼을 갈 적에도 숫돌에 석석 차근차근 문대면서 날이 잘 서도록 갈자. 가끔 가위도 갈고, 부엌칼 아닌 작은 칼도 갈자. 노래를 부르면서 숫돌질을 하자. 4346.8.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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