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는 책읽기
안동으로 나들이를 왔다가, 안동 와룡면 이하리 조그마한 교회에 ‘사역’을 나온 대학생들을 만난다.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간다고 하는데, 이 젊은이들은 조그마한 시골 교회에 조그마한 시골마을 사람들 다닐 수 있도록 ‘선교’를 하는 일을 맡은 듯하다. 그러면, ‘선교’란 무엇일까. 종교를 퍼뜨리는 일이 선교인가, 종교를 알리는 일이 선교인가. 종교는 왜 퍼뜨려야 하고, 종교는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
우리 집 작은아이 이름을 생각한다. ‘산들보라’는 “산들바람처럼 시원한 눈길로 마음속에 있는 빛을 보라”를 뜻한다. 하느님이란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고, 사람뿐 아니라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와 나무 한 그루와 벌레 한 마리와 물 한 방울과 흙 한 알에도 똑같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모든 숨결은 똑같이 하느님이요, 모든 빛은 똑같이 사랑이라는 소리가 된다.
내 몸을 이룬 우주를 헤아리면서 우주를 이루는 나를 헤아린다. 내 마음을 이끄는 빛을 살피면서 우주를 이끄는 빛을 살핀다. 하느님을 예배당 한켠이나 십자가 한쪽이나 성경 한 대목에만 못박아 둔다면, 어느 누구도 참빛을 깨닫지 못한다. 하느님이 우주를 빚었다는 말은 ‘나 스스로 이 우주를 빚었다’는 뜻이다.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하느님, 곧 내가 빚은 님이라는 뜻이다. 좋은 일도 궂은 일도 하느님, 그러니까 나 스스로 빚은 일이라는 뜻이다.
선교를 하면 얼마나 즐거울까. 선교를 하면 누가 즐거울까. 무엇보다도, ‘무엇’을 퍼뜨리거나 알리거나 말할 수 있을까. 예배당으로 나오라는 말, 십자가를 몸에 건사하라는 말, 성경을 읽으라는 말, 이 세 가지 굴레에 사로잡힌 채 이녁 마음속을 살피거나 느끼거나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 빛뿐 아니라 우주를 알아낼 수 없으리라 본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섬기는 까닭은, 내 이웃도 나와 똑같이 하느님이기 때문이지, 다른 뜻이 없다. 사랑을 나누는 까닭은 나와 같이 누구나 하느님이기 때문이지, 다른 뜻이 없다. 4346.8.1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