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떠나는 책읽기

 

 

  사람들이 휴가를 얻어서 어디론가 떠납니다. 아니, 도시에서 살아가며 회사나 공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이레쯤 쉴 겨를을 얻어, 비로소 식구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보내면서 어디론가 먼길을 나섭니다. 물 맑고 바람 시원한 데를 찾아서 떠나는 일이 휴가라기보다, 여느 때에는 눈 마주치며 말 섞기조차 못하던 한식구가 모처럼 스물네 시간을 이레쯤 함께 보내는 겨를이 휴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나도 2003년 8월 31일까지는 회사(출판사)에 다녔습니다. 그러니, 이때에는 나도 휴가라는 며칠 쉴 틈을 얻었습니다. 출판사라는 회사는 거의 다 서울에 있으니, 내 삶자리도 서울이었습니다. 나는 나한테 주어진 휴가라 하는 틈에 기차를 타고 부산과 대구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갔고, 대전이나 청주에 있는 헌책방을 드나들었습니다. 지난날 나한테 휴가라 하면, 가까이에서 쉬 찾아가지 못하는 곳에 있는 헌책방까지 마실을 가서 내 마음눈 트도록 돕는 아름다운 책 만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책방은 아주 조용합니다. 오늘날 책방은 휴가철 아니어도 참 조용합니다. 아니,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처럼 큼지막하게 올려세운 곳 말고, 동네나 마을을 오래도록 지키며 책사랑 나누던 작은 책방은 책손이 뜸해서 더없이 조용합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들이 찾아보려는 책은 커다란 책방 아닌 자그마한 책방에도 다 있는데, 하나같이 굳이 커다란 책방으로 몰립니다. 커다란 책방 구석구석 조용히 꽂힌 작은 책을 찾으려는 손길이기에 그야말로 커다란 책방으로 찾아갈까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쉬려고 물 맑고 바람 시원한 데를 찾아가려 한다면, 여느 때에 늘 물 맑고 바람 시원한 터전을 누릴 때에 가장 즐겁고 아름다우며 신나고 사랑스러운 삶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 해 가운데 고작 이레쯤 맑은 물이랑 시원한 바람을 누린다면, 이러한 삶이 즐거울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내내 맑은 물이랑 시원한 바람을 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이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다면, 하루만 읽고 덮는 책이라면 안 읽어도 됩니다. 책을 읽으려 한다면, 한 해 내내 읽을 책일 때에 읽으면 즐겁습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어른 스스로 기쁘게 찾아서 읽고, 책시렁에 곱다시 얹으면 아주 즐겁습니다.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지 않은 책은, 참말 어른들 스스로 읽을 만하지 못한 책입니다. 아이들한테 들려줄 만하지 못한 이야기는, 참말 어른들 스스로 들을 만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들한테 먹이지 못할 만한 밥을 어른들이 굳이 먹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지 못할 만한 것을 어른들이 애써 장만하고 사들여 갖추어야 할까요. 몸과 함께 마음이 사랑스럽도록 책 하나 찾고 싶어, 나는 내 몸과 마음에 가장 걸맞다 싶은 조그마한 책방으로 아이들과 함께 사뿐사뿐 마실을 다닙니다. 4346.8.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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