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책 2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시간을 들여 글을 읽는다. 누군가 쓴 글이나 책을 읽는다 할 적에는, 누군가 누린 삶, 곧 누군가 보내거나 땀흘린 시간을 읽는 셈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를 받아먹기 마련인데,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따지면, 내 둘레 아름다운 이웃이 씩씩하고 즐겁게 일군 삶이다. 오랜 나날 씩씩하고 즐겁게 일군 삶을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엮어서 보여주는 책이라고 느낀다.
여느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아주 많이 읽는다. 이 책들이 더 좋아서 더 읽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안 읽으니 알 턱이 없다. 내가 읽는 책은 그저 내 둘레 아름다운 이웃이 씩씩하고 즐겁게 일군 삶이 드러나는 책일 뿐이다. 이런 책 가운데에는 나도 모르는 베스트셀러가 있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책으로가 아닌 삶으로 읽거나 만날 적에는, 늘 이야기 한 자락이 스며든다. 얼마나 긴 나날 얼마나 품을 들여 하루하루 밝혔기에 이러한 이야기 한 자락 샘솟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잘 모르거나 조금만 아는 아름다운 이웃이 알알이 영근 이야기가 깃든 책을 내 품과 겨를을 듬뿍 들여서 읽는다. 아름다운 이웃이 누린 아름다운 삶을 읽는 만큼, 나도 내 품과 겨를을 넉넉히 들여서 읽는다.
품을 들여 알뜰히 쓴 글은 품을 들여 알뜰히 읽을 때에 빛난다. 사랑을 들여 살가이 쓴 책은 사랑을 들여 살가이 읽을 때에 값지다. 글이란 삶이고 책이란 사랑이라면, 글과 책을 빚은 사람들 삶과 사랑에 내 삶과 사랑을 어우러 놓을 때에 책빛이 이 땅에 드리우리라 느낀다. 경상도 밀양땅에 송전탑 놓는 일 막겠다며 외친 사람들 여러 해 땀방울이 흐른 끝에 ‘한전 내부 보고서’가 언론매체에 드러났다. 송전탑 곁 80미터 안쪽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전자파 때문에 크게 탈이 난다는 줄거리 담겼다고 한다. 송전탑 곁 80미터 안쪽이 무시무시한 전자파 수렁이라면, 81미터는? 82미터는? 83미터는? 이리하여, 송전탑 둘레 100미터와 110미터는? 송전탑 둘레 1킬로미터는?
시골에서는 논 한복판에 송전탑을 처박기도 하고, 도시에서는 학교 옆에 송전탑을 때려짓기도 한다. 다만, 청와대 앞마당이나 국회의사당 한복판에 송전탑을 세우거나 처박지는 않는다. 신문사 문간에 송전탑 하나 처박아 보면 어떠할까. 종로나 압구정동 한복판에 송전탑 하나 때려지으면 어떠할까. 전기 가장 많이 쓰는 서울 곳곳에 송전탑 무시무시하게 세워야 비로소 ‘시골마을에 아무렇게나 때려박는 송전탑’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깨달으려나.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들 기나긴 땀방울을 씻어 줄 소나기 한 모금 시원하게 내리기를 빈다.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