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책읽기

 


  작은아이가 자다가 똥을 듬뿍 누었다. 작은아이 밑을 씻기고 똥바지와 똥기저귀를 헹군다. 이 모든 몫은 물이 해 준다. 물줄기가 작은아이 사타구니와 다리에 묻은 똥을 말끔히 벗긴다. 내 허벅지에도 묻은 똥을 물줄기가 깨끗이 벗긴다. 물줄기는 아이 바지와 기저귀에 묻은 똥을 낱낱이 떨군다.


  물을 마시면서 속을 다스린다. 물로 낯을 씻으며 시원하다고 느낀다. 물로 밥을 짓는다. 벼는 논에서 물을 마시면서 자란다. 따로 물잔에 담아 마시지 않더라도 늘 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바람을 먹고 물을 마신다. 어떤 사람한테도 바람과 물이 가장 대단한 빛이다. 대통령한테도 군인한테도 재벌 우두머리한테도 노동자한테도, 바람과 물이 없으면 어떠한 권력이나 이름이나 돈도 거머쥘 수 없는 노릇이다.


  바람이 싱그럽고 물이 맑아야 삶을 삶답게 누린다. 사람도 짐승도 풀도 나무도 모두 똑같다. 고속도로나 자가용 아닌 바람과 물을 살펴야 할 행정이며 정책이어야 한다. 관광이나 예술 아닌 바람과 물을 돌보아야 할 정치이며 교육이어야 한다.


  밤바람에 실리는 밤노래를 고즈넉하게 듣는다. 시골마을 저 깊은 밑바닥을 흐르는 물줄기를 뽑아올려 물 한 그릇 마신다. 내 몸은 내가 살아가는 곳을 감싸는 바람과 물로 이루어진다. 내 마음은 내 몸을 지키거나 돌보거나 살찌우는 결에 따라 날마다 새롭게 거듭난다. 4346.7.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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