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꾸리는 보람 (도서관일기 2013.7.2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올여름에도 곰팡이가 핀다. 더운 날 비가 뿌리고 나면 교실 안쪽은 더 후끈후끈하니 곰팡이 피기에 참 좋은 터전이로구나 싶다. 이런 모습 볼 적마다 ‘내가 쓴 여러 가지 책’들을 신나게 팔아 글삯 벌어서 얼른 이 학교를 사들여 옥상과 바깥벽 공사 새롭게 하고, 건물 둘레 등나무를 치운 뒤 나무숲으로 곱게 일구어야겠다고 느낀다. 또는, 누군가 뜻있는 사람들이 우리 도서관이 되는 학교 터를 사들여서 선물해 줄 수 있으리라.
합판책꽂이에 핀 곰팡이를 닦는다. 합판책꽂이 가운데 빼내어 치울 만한 것은 빼내어 치운다. 2011년 가을에 고흥으로 와서 2012년 여름에 비로소 책 갈무리 마치고 ‘자, 도서관 깔끔히 치웠답니다! 신나게 나들이 오셔요!’ 하고 알리고 싶었으나, 바로 그무렵부터 합판책꽂이에 피는 곰팡이를 깨달았다. 원목으로 짠 책꽂이가 아니고서는 도서관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느꼈기에, 원목책꽂이를 조금씩 갖추어 들이면서 합판책꽂이를 치운다. 이러기를 한 해째 하는데, 아직 합판책꽂이를 다 빼내지 못했고, 원목책꽂이를 더 들이지 못했다. 원목책꽂이는 ‘문 닫은 책방’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값이 만만하지 않으니까.
2014년이 되면 ‘책꽂이 갈이’를 끝마칠 수 있을까. 이듬해쯤 되면 책꽂이 걱정은 사라질 수 있을까.
합판책꽂이를 아예 버리지는 못하고, 창가에 둔다. 합판책꽂이라 하더라도 창가에 두어 늘 햇볕을 받도록 하면 뜻밖에 곰팡이가 안 핀다.
돈을 버는 재주는 아직 한참 어수룩하고, 책을 그러모으며 읽는 재주만 있는데, 이런 재주로 도서관을 열었으니 용하다 할까, 씩씩하다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도서관이란, 건물이 번듯한 곳이 아니다. 책이 책답게 아름다이 있는 곳일 때에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느 사람들 조그마한 살림집에 깃든 책꽂이라 하더라도 알차고 아름답게 꾸리면, 모두 ‘집 도서관’이 된다고 생각한다.
책다운 책을 알맞고 알차게 갖출 때에 비로소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학생 적에도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이던 때에도 이렇게 생각했다. 아무 책이나 얼추 꽂고는 ‘장서 숫자’만 자랑한다고 도서관이 되지 않는다. 빼어난 건축으로 새로 지으면 ‘건물 멋진’ 도서관이라 할 텐데, 건물짓기를 넘어 ‘어떤 책을 어떻게 얼마나 갖추려 하는가’와 같은 대목을 깊이 살피는 도서관은 아직 찾아보지 못한다.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데도 어린이책이라는 한 가지를 눈여겨보기는 하지만, 어린이책을 어떻게 얼마나 갖추려 하는가와 같은 대목을 깊이 살핀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나라 안팎 온갖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기적의 도서관’에서 두루 갖추려 하는가? 이 나라 오래된 어린이책을 자료로 갖추고자 꾸준히 돈을 들여 헌책방을 찾아다니기는 하는가?
건물이 커다란 도서관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찾으려 하는 책을 잔뜩 갖추어 ‘책 손님’ 많이 받는 구실 하리라 생각한다. 우리 도서관은 건물도 폐교 건물 임시로 빌려서 쓰는데다가, 책꽂이조차 아직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새 책꽂이 들이는 데에도 많이 벅차다. 변변한 알림판이나 간판 또한 아직 세우지 않았다. 다만, 우리 도서관에는 나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책을 갖추어 꽂는다. 백만 사람한테 보여주기는 어렵고 만 사람 아닌 천 사람한테 보여주기도 쉽지 않지만, 다른 어느 도서관이나 책방에서조차 만나기 어렵거나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아름다운 책’을 우리 도서관에 하나둘 그러모아 건사한다고 느낀다.
나는 다른 어느 대목보다, 바로 이 대목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어 도서관을 열어서 올해로 일곱 해째 꾸린다. ‘책 한 권을 찾아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도록’ 하는 도서관이고, ‘책 한 권을 만나는 기쁨 누리려고 호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찾아오도록’ 부르는 도서관이다.
살림돈은 늘 바닥이고, 책꽂이 새로 얻을 돈 모으기란 빠듯하지만, 아름답구나 싶은 책을 볼 때면, 살림돈이고 책꽂이 얻을 돈이고 으레 뒤로 미룬다. 돌이켜보면, 늘 이처럼 살았으니 책을 모을 수 있었고 도서관을 열 수 있었구나 싶다. 도서관을 꾸리는 보람이라면 참말 이 한 가지이다. 우리 사진책도서관에는 한국에 꼭 한 권만 있을는지 모르는 책이 있고, 어쩌면 지구별에 꼭 한 권만 있구나 싶을 책이 있는 곳이라고.
그런데, 한국에 꼭 한 권만 있을는지 모르는 그 책이 돈값으로 치면 그리 비싸지 않다. 만 원? 십만 원? 오천 원? 또는 천 원? 돈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책 있는 도서관을 꾸린다는 보람으로 오늘도 곰팡이를 닦고 합판책꽂이를 치운다. 우리 도서관을 뒷배할 예쁜 사람들은 누가 될까 하는 꿈을 꾼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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