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채우는 즐거움

 


  나 혼자 쓰는 방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무렵부터 얻었지 싶다. 이때에 내 책꽂이를 하나 얻었다. 처음 얻은 내 책꽂이에 꽂을 책은 얼마 안 되었다. 다달이 서너 권씩 또는 너덧 권씩 사서 읽는다 하더라도 몇 달이 지나도록 한 줄을 빽빽하게 채우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헌책방에 눈을 뜬다. 이제 헌책방에서 주마다 열 권이나 열다섯 권씩 책을 사들여 읽는다. 대입수험생이지만 내 가방에는 교과서와 참고서 아닌 책이 언제나 다섯 권이나 일곱 권쯤 함께 깃든다. 갑작스레 책에 눈을 뜨면서 이 책도 읽고 싶고 저 책도 읽고 싶은 나머지, 가방에 여러 가지 책을 잔뜩 챙긴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에 읽고, 쉬는 때에 읽으며, 낮밥과 저녁밥을 학교에서 먹는 동안에도 읽는다. 자율학습으로 돌리며 밤 열한 시까지 붙잡을 적에도 참고서 밑에 책을 숨기며 읽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에도 책을 펼친다. 길거리 밝히는 등불 빛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내 책을 헌책방에서 100권 넘게 사서 읽을 수 있어 놀라웠고 기뻤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150권쯤 사서 읽었던가.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자습서와 교과서와 문제집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하루에 두세 권씩 읽겠다고 다짐을 하며 책을 사들여 읽는다.


  어느덧 책꽂이 하나로는 모자란다. 책꽂이를 새로 들인다. 새로 들인 책꽂이도 머잖아 꽉 찬다. 책을 겹쳐 꽂는다. 바닥에 쌓는다. 침대 아래에 쌓는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누군가는 책을 침대처럼 바닥에 깔고 드러눕는다고 하기에 나도 한 번 해 보는데, 책탑이 흔들흔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느낀다.


  이러구러 스무 해가 흘러 서른아홉 살이 되고, 내가 건사하는 책꽂이 갯수는 백 개가 넘는다. 따로 세지 않아 잘 모른다. 곧 이백 개가 넘어가리라 생각할 뿐이다. 책꽂이 빽빽하게 채우도록 책을 아끼는구나 싶어 내 삶이 새삼스럽구나 싶고, 이 책들과 책꽂이들은 스스로 알록달록 어여쁜 빛을 이루며 새롭게 나한테 다가온다고 느낀다.


  새책방은 출판사에 주문해서 책꽂이를 채운다지만, 헌책방은 헌책방지기 스스로 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모아서 책꽂이를 채운다. 한꺼번에 책꽂이 꽉 채우는 헌책방은 한 군데도 없다. 썩다리까지 아무렇게나 책꽂이를 채우는 헌책방은 없다. 더디 걸리거나 여러 해 걸리더라도 헌책방은 어느 곳이든 찬찬히 책꽂이를 채운다.


  마땅한 노릇이리라. 책을 좋아하고 아끼며 사랑하니, 책을 즐겁게 읽으며 책꽂이 채우는 책사랑꾼처럼, 책방지기도 손으로 하나하나 살피고 훑으며 이녁 일터인 책방에 건사할 책을 그러모으리라.


  대영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처럼 으리으리한 건물은 아닌 헌책방이요, 열 평조차 안 되는 다섯 평짜리 헌책방도 많지만, 이 조그마한 헌책방 책꽂이를 들여다보면 빙그레 웃음꽃이 핀다. 예뻐서, 고와서, 사랑스러워서 방실방실 웃으면서 손을 뻗어 한 권 두 권 살며시 쓰다듬는다. 너희 가운데 누가 우리 집 책꽂이로 옮겨 와서 곱다시 꽂히겠니? 4346.7.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