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쌀씻기
한여름이 되고 보니, 누런쌀 씻어 물에 담그면, 아침에 담근 쌀이 낮에도 살짝 쉰내 돈다.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 물갈이를 자주 하지만, 엊저녁에 밥을 지어서 차린 뒤에 곰곰이 생각한다. 나는 어차피 아이들 모두 재운 깊은 밤에 글을 쓰니까, 글을 쓰다가 쌀을 씻어서 불리자 하고.
한밤이랄까 새벽이랄까, 세 시 반에 쌀을 씻어서 불린다. 이렇게 불린 쌀은 아침이나 낮에 새밥을 지어서 먹겠지. 엊저녁 밥이 조금 남았으니, 이렇게 남은 밥은 옥수수랑 다른 여러 가지 섞어 볶음밥을 하고, 저녁밥을 새로 지을까 생각해 본다.
쌀을 씻을 때마다 우리 식구 모두 밥 맛나게 먹을 수 있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모두 맛있는 밥 즐겁게 먹으며 사랑스러운 기운 얻기를, 하고 빈다. 우리 식구 맑은 물 서린 밥을 기쁘게 먹으며 고운 노래 부르는 하루 누리기를, 하고 빈다.
나는 국민학교 3학년이던 열 살 때부터 내 꿈을 ‘가정주부’라고 적으면서 살았는데, 참말 열 살 적 꿈처럼 서른아홉 살 오늘, 집살림꾼 되어 밥을 짓고 아이들 돌보는 나날을 누린다. 얘들아, 우리 함께 고소한 밥 먹으면서 날마다 새롭게 꽃노래 부르자. 4346.7.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