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삯 10만 원
7월 13일 토요일 낮 네 시에, 서울 김대중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책잔치가 있다. 《이오덕 일기》 다섯 권을 펴낸 출판사에서 뜻있게 마련하는 책잔치이다. 이날 이곳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기차표를 알아본다. 나와 두 아이 몫으로 순천역부터 영등포역 오가는 데에 10만 원이 든다. 고흥읍에서 순천역까지 가자면 1만 400원. 돌아오는 버스삯까지 헤아리면 2만 800원. 서울 가는 길에는 도시락을 쌀 테니까 밥값이 조금만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도시락을 사서 먹여야 하니 밥값 얼마쯤. 그리고 기차역에서는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라 택시삯 얼마쯤. 이래저래 헤아리면 적어도 20∼30만 원은 있어야 서울마실이 된다. 옆지기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보태는 돈이 퍽 빠듯해, 지난달 카드값으로 아직 84만 원을 치르지 못해 이틀 걸러 한 차례씩 전화가 온다. 7월에는 철수와영희 출판사 3/4분기 글삯이 들어오니 어찌저찌 지난달 카드값은 막을 듯한데, 7월 27일에 새로 치를 카드값은 어떻게 될까. 여러모로 따지고 살피는데 막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고, 내 글을 책으로 내주겠다 나서는 데가 좀처럼 안 보여, 이래서야 책잔치에 갈 수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자꾸 든다. 토·일요일에 기차를 타니 일찍 끊어야 하지만, 서울에서 지역으로 가는 찻길 아닌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찻길이니 조금 느긋하기는 한데, 아무튼 좋은 수가 나리라 믿으며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부채질을 한참 해 주다가 그만 부채를 털썩 떨어뜨리며 어느새 곯아떨어진다. 한참 곯아떨어진 채 아이들 사이에 드러누웠는데 문득 전화기가 울린다. 미국에서 옆지기가 아이들 목소리 들으려고 이밤에 전화를 했나? 아니다. 《이오덕 일기》를 펴내 준 양철북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 목소리이다. 즐겁게 술 한잔 마시다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셨단다. 술을 드셨다는 말에 그러면 나도 홀가분히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 굴뚝같은 마음이나 찻삯 걱정에 여러모로 그날 가기 어렵겠다 말한다. 그러니, 먼 데서 오는 손님을 생각해 숙소를 여러 곳 잡아 놓으셨단다. 어, 그러면 잠자는 데 들일 여관삯 35000원은 굳힐 수 있네,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여관삯이 굳어도 어디인가. 그렇지만, 전화를 받는 내내 ‘갈까 말까’를 다시금 망설인다. 여관삯은 35000원이지만, 기찻삯은 10만 원이고, 다른 찻삯이랑 밥값이나 과자값이 있다. 속으로 크게 숨을 들이켜고, 가겠습니다, 하고 말한다. 잘 되겠지. 기찻삯이며 다른 값이며 즐거운 길이 열려 잘 건사할 수 있겠지. 4346.7.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