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 한 책들은

 


  커다랗게 만들어도 책이고, 조그맣게 만들어도 책입니다. 커다랗게 만든대서 이야기가 커지지 않습니다. 조그맣게 만들기에 이야기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꼴로 만들어도 책에 깃드는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책에 때가 타거나 먼지가 앉아도 이야기에는 때가 타지 않고 먼지가 앉지 않습니다. 책이 헐어도 이야기가 헐지 않습니다. 책이 다쳐도 이야기가 다치지 않아요. 아이들은 똑같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천 번 만 번 되읽습니다. 책이 아주 낡고 닳습니다. 그런데, 책이 낡고 닳을수록 이야기가 한결 빛나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책빛이란, 이렇게 손길을 타는 빛이요, 눈길을 받는 빛일는지 몰라요.


  손바닥만 한 책들에는 손바닥만 한 이야기가 깃들지 않습니다. 크기는 손바닥만 하지만, 이야기는 너른 바다와 같습니다. 한손으로 쥘 만큼 가볍고 작은 책이지만, 이야기는 깊은 숲과 같아요.


  책을 읽습니다. 커다란 책이나 조그만 책 아닌, 내 마음 북돋우는 아름다운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이름있는 책이나 이름없는 책 아닌, 내 사랑 보듬는 어여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습니다. 값있는 책이나 값없는 책 아닌, 내 꿈 밝히는 책을 읽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이 우람한 나무로 자랍니다. 아기 손톱보다 훨씬 작은 씨앗 하나가 아주 커다란 나무로 자랍니다. 나무씨는 콩씨보다 작기 일쑤입니다. 나무씨가 아주 조그맣대서 조그마한 나무로 자라지 않아요. 마음속에 고운 빛 품기에 씩씩하게 자랍니다. 가슴속에 맑은 빛 어루만지기에 튼튼하게 자랍니다.


  이야기 한 타래 책밭에서 자랍니다. 이야기 한 꾸러미 책터에서 자랍니다. 이야기 한 가지 책누리에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작은 손길 뻗어 손바닥만 한 책들 사이에서 조그마한 이야기씨앗 하나 받아안습니다. 4346.7.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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