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산복이 창비아동문고 101
이문구 지음 / 창비 / 198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20

 


놀고 노래하며 크는 어린이
― 개구쟁이 산복이
 이문구 글
 창비 펴냄,1988.4.15./8000원

 


  낯선 어른이 우리 아이한테 사탕이나 과자를 먹으라고 건넵니다. 낯선 어른은 아이들 어버이를 찾거나 부르지 않고 아이한테 곧바로 사탕이나 과자를 대뜸 건넵니다. 아이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안 받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조차 우격다짐처럼 아이 손에 사탕이나 과자를 쥐어 줍니다.


  낯선 어른, 아니 여느 어른들은 아이한테 사탕 한 알 과자 한 봉지 무엇 대수롭느냐 하고 말합니다. 아마, 하나도 안 대수로울 수 있어요. 고작 10원이나 100원이나 1000원쯤 할 테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기울여 보셔요. 사람마다 몸이 다르고 마음이 달라요. 사람마다 몸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고기를 못 먹고, 어떤 사람은 밀가루를 못 먹지요. 먹을거리는 아무한테나 함부로 건네어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 주고 싶다면 물어 보아야 해요. 먹어도 될 만한지 물어야 해요.


  사탕이나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배앓이를 하거나 멀미를 하느라 아무것 안 먹일 수 있어요. 낯선 어른, 그러니까 여느 어른은 어버이가 아니니, 이런 아이 몸을 모르지요. 말로 얘기해도 안 믿기 일쑤이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배가 아프면 차를 타느라 멀리를 했든, 사탕이나 과자를 입에 우겨넣어 우웩 하고 게워야 할까 궁금해요.


.. 엄마가 장보러 가시면 / 아기도 장보러 가지요. / 엄마는 바빠서 / 앞장 서시고 / 아기는 종종걸음 / 뒤따르지요 ..  (엄마랑 아기랑)


  어른들은 아이한테 아무 말이나 함부로 건네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지껄이는 말투 그대로 아이한테 지껄이곤 합니다. 거친 말투나 막된 소리를 아이들 앞에서 버젓이 지껄이곤 해요. 어른들끼리 주고받으니 아이들한테 안 들린다 여기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못 느끼는 사이에, 거칠거나 막된 말투가 아이들한테 퍼지면서 스며듭니다. 아이들이 거칠거나 막된 말투를 쓰는 까닭은 모두 어른들 때문이에요. 마음 깊이 가장 맑으며 밝은 말을 해야 할 어른이지만, 어른 스스로 어른다움을 건사하지 못하니, 아무 말이나 내뱉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함부로 말을 놓아요. 나이가 많다 해서 나이가 적은 사람한테 말을 놓아도 되지 않아요. 말을 함부로 놓는 사람들은 나이는 많다지만 마음그릇이 얕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셈이라고 느껴요. 사람을 겉모습으로 재거나 따지면 안 된다면, 돈으로도 자동차로도 옷으로도 나이로도 재거나 따지면 안 돼요. 가장 부드럽고 따사로운 말씨로 아이들한테 말을 걸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에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나이 빼놓고는 물어 볼 줄 모릅니다. 아이들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자라는지 묻는 어른이 몹시 드뭅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가만히 묻고는, 꿈과 사랑과 빛을 오순도순 이야기꽃으로 피울 줄 아는 어른이 대단히 드뭅니다.


  아무래도 어른들 스스로 재미없이 살아가니까, 재미없게 물어 볼밖에 없지 싶어요. 아무래도 어른들 스스로 마음속에 꿈이나 사랑이나 빛을 담지 않다 보니, 아이들한테 꿈이나 사랑이나 빛을 묻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 토끼풀꽃 따서 / 목걸이 만들고 // 민들레꽃 따서 / 시계 만들고 // 씀바귀꽃 따서 / 꽃다발 한아름 // 우리 아기 봄나들이 / 꽃밭이었네 ..  (봄나들이)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읽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안 다녀도 됩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실컷 뛰놀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학문을 닦거나 지식을 쌓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 삶을 익힐 수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을 자가용에 안 태워도 됩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젊은이는 아이를 낳는다 하면 커다란 자가용을 뽑곤 해요. 아이가 둘이나 셋이 되면 더 큰 자가용으로 바꾸어요.


  아이들은 자가용을 타고 싶을까요? 어른들 가운데 아이한테 “얘야, 자동차 타고 싶니?” 하고 묻고 나서 자가용을 장만한 분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어른들 물음에 대꾸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셔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물어 보셔요. 삶을 어떻게 지으면 좋을는지 아이 생각을 들어요. 삶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는지 아이 생각을 들어요.


  무턱대로 어른들 생각대로 아이들을 붙잡지 말아요. 이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워야 하느니 태권도 학원 다녀야 하느니 하고, 멋대로 틀을 잡지 말아요. 몇 살부터 영어 그림책 보여주어야 한다느니, 언제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느니, 엉터리 틀을 세워 아이들을 닦달하지 말아요.


  아이들 몸을 살피고,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요. 아이들이 무엇을 하면 좋아하고, 아이들은 무엇을 바라는가를 귀를 기울여 들어요.


.. 엄마는 아침부터 / 밭에서 살고 // 아빠는 저녁까지 / 논에서 살고 // 아기는 저물도록 / 나가서 놀고 ..  (오뉴월)


  개구리는 올챙이 적을 모른다 말하지만, 어른은 아이였을 적을 모르는구나 싶어요. 어느 어른이더라도 갓난쟁이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라다가 어린이로 뛰놀았고 푸름이로 눈빛을 밝히다가 젊은이가 되지요.


  어른은 늘 뒤돌아볼 수 있어야 해요. 어른은 누구나 스스로 어린이였구나 하고 뒤돌아보면서, 오늘을 어린이로 살아가는 숨결 앞에서 어떤 몸가짐과 매무새와 눈빛과 마음일 때에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흐뭇한 삶 지을 수 있는가를 살필 줄 알아야 해요.


  즐겁게 놀 줄 알 때에 즐겁게 일할 줄 알아요. 신나게 뛰놀 줄 알 때에 신나게 두레를 할 줄 알아요. 웃으며 노래할 줄 알 때에 웃으며 품앗이를 할 줄 알아요.


  모든 어린이는 시인이에요. 모든 어린이는 꿈을 꾸는 시인이에요. 모든 어린이는 꿈을 꾸는 시인으로 살아가며 사랑을 나누어요. 모든 어린이는 꿈을 꾸는 시인으로 살아가며 사랑을 나누기에 삶을 지을 줄 알아요.


.. 키다리 수수이삭 / 긴 목을 숙였다. // 난쟁이 밭벼이삭 / 밭은 목을 숙였다. // 하늘이 너무 높아 / 땅만 보나 봐. // 고추밭에 고추잠자리 / 고추보다 빨갛다. // 풀밭에 풀잠자리 / 풀보다 파랗다. // 하늘이 너무 짙어 / 물 들었나 봐 ..  (가을 하늘)


  바로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살다가 어린이로 무럭무럭 자란’ 만큼, 모든 어른들 누구나 시인입니다. 어쩌면, 시인이‘었’다고 해야 할 테지만, 어른들도 모두 시인입니다.


  문장작법이나 문장교수 따위로 문학작품 만드는 시인이 아니라, 삶을 노래하는 시인입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짓는 시인입니다.


  밥 한 그릇 차리는 손길이 시를 쓰는 손길입니다. 아이들 머리카락 쓸어넘기고 아이들 품에 꼬옥 안으며 아이들 손을 잡고 마실 다니는 손길이 곧 시를 쓰는 손길입니다.


  숲을 바라보는 눈길과 구름이랑 무지개를 바라보는 눈길이 시를 마주하는 눈길입니다. 하늘을 읽고 흙을 읽으며 풀과 나무와 벌레와 멧새를 읽는 눈길이 바야흐로 시를 읽는 눈길이에요.


  시는 늘 삶을 그려요. 시는 늘 이녁 삶터에서 노래해요. 시는 늘 우리 삶자락을 따사롭게 사랑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린이는 모두 시인인 터라, 언제나 삶을 그리듯 놀이를 즐깁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인 만큼, 언제나 바로 이곳 아이들 보금자리에서 노래하며 춤춥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하고 환하게 웃고 떠드는 하루를 아주 좋아해요.


.. 까치는 일찍부터 / 집 앞에서 들락날락. / 까마귀는 늦게까지 / 들녘에서 오락가락 ..  (까치니 까마귀니)


  놀고 노래하면서 큰 어린이가 착하게 일하고 참답게 살아가은 어른으로 우뚝 섭니다. 놀고 노래하면서 자란 어린이가 아름답게 꿈꾸고 해맑게 사랑하는 어른으로 기쁘게 웃습니다.


  놀지 못하고 노래하지 못한 어린이는 얼굴에 빛이 어리지 않습니다. 놀이를 못하게 가로막히고 노래를 못하게 짓눌린 어린이는 마음에 빛이 서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 얼굴을 마주하면, 놀이도 노래도 빛도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렵구나 싶어요. 어쩔 수 없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대학입시 굴레에 들볶이거나 시달렸어요. 중·고등학교 여섯 해 동안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서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받아먹거나 꿈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매우 적어요. 초등학교 여섯 해 동안 비지땀 흠뻑 흘리면서 실컷 뛰어놀았던 아이들이 아주 적어요.


  놀지 못한 아이들이니, 꿈이 없을 수밖에요. 노래하지 못한 아이들이니, 살섞기나 입맞춤이나 쓰다듬기 빼고는 사랑이 무언지조차 생각을 못할밖에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삶을 짓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놀이’를 한다고 할 때에 무엇을 하면서 노나요. 술 마시고 담배 태우고 노래방 가는 것 빼고, 어른 스스로 어떤 놀이가 있나요. 찻집 가고 맛집 가고 관광 하는 것 빼고, 어른 스스로 어떤 놀이를 새롭게 짓는가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고 할 적에 ‘어른으로서 누리는 놀이나 잔치’로 무엇을 물려주거나 이어주거나 가르칠 수 있나요.


.. 이마에 땀방울 / 송알송알 / 손에는 땟국이 / 반질반질 / 맨발에 흙먼지 / 얼룩덜룩 / 봄볕에 그을려 / 가무잡잡 / 멍멍이가 보고 / 엉아야 하겠네 / 까마귀가 보고 / 아찌야 하겠네 ..  (개구쟁이 산복이)


  이문구 님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창비,1988)를 읽습니다. 이문구 님네 아이 산복이와 자숙이가 이 동시집 주인공입니다. 이문구 님은 이녁 아이 산복이와 자숙이를 ‘시골에서 살아가는 동안’ 꾸준히 지켜보면서 고운 사랑을 싯말로 적바림합니다.


  아니지요. 고운 사랑을 싯말로 적바림했다는 말은 옳지 않아요. 실컷 뛰노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저절로 시가 노래로 태어났다고 해야 옳아요. 아이들도 즐겁고 어른도 즐거우니, 저절로 시가 샘솟았다고 해야 옳아요.


.. 자숙이가 놀다가 / 울고 들어왔다. / 누가 / 꼬집어서 / 울었을까. // 빨간 약을 발라서 / 곤지 하나 / 연지 하나 ..  (울보 자숙이)


  어른들 읽는 시도, 아이들 읽는 시도, 아무렇게나 짓지 못해요. 이런 시도 저런 시도 문장기교나 수사법 따위로 쓸 수 없어요. 모든 시는 마음으로 써요. 모든 시는 가슴속에 사랑을 담아서 써요. 모든 시는 한결같이 가장 맑은 마음일 때에 시나브로 한 마디 두 마디 솟구쳐요.


  노래로 흥얼거리듯 흘러나오는 시예요. 냇물이 흐르듯 맑게 노래하는 시예요. 멧새가 노래하고 개구리가 노래하듯 온누리 시원스레 적시는 시예요.


  비오는 날, 비와 한마음이 되어 비를 노래하면, 이 노래가 바로 시입니다. 눈오는 날, 눈과 한몸 되어 눈놀이를 하면서 노래하면, 이 노래가 곧 시입니다.


.. 산복이가 혼자서 / 그림자랑 둘이서 ..  (오누이)


  우리 어른들이 부디 아이들한테 시를 안 가르치기를 빌어요. 아이들한테 시를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시를 누릴 뿐이지, 시를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놀이를 즐기듯 시를 즐길 뿐이지, 시를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듯, 동시(시) 하나를 읽으며 삶을 깨닫고 사랑을 느끼며 이야기를 헤아려요.


  아이들더러 동시(시)를 쓰라고 밀어붙이지 말아요. 교과서 진도에 아이들더러 ‘동시 쓰기’ 하도록 몰아세우지 않기를 빌어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노래하면서 적바림할 때에 동시(시)예요. 다른 것들은 모두 겉치레이거나 말장난이나 말재주가 될 뿐이에요.


  아이들은 대유법이니 반어법이니 도치법이니 몰라도 될 뿐 아니라, 어른들 또한 이 따위는 알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이런 글재주 말재주를 ‘동시 작법’이라고 해서 책을 쓰는 일도 안타깝지요. 이런 글멋부리기 말멋부리기를 ‘동시 교수법’이라고 해서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도 안쓰럽지요.


  날마다 누리는 삶이 있을 때에 이야기가 태어나요. 이야기가 태어날 때에 사랑이 샘솟아요. 사랑이 샘솟을 때에 노래가 흘러요. 노래가 흐를 때에 환하게 웃어요. 환하게 웃을 때에 신나게 뛰놀아요. 신나게 뛰놀 때에 새롭게 삶을 지으면서 꿈을 꾸어요. 그리고, 이 꿈을 연필 쥐어 글로 옮겨적으면 시예요.


.. 깜부기 뽑으면 / 종다리 뜨고. // 삘기꽃 꺾으면 / 물총새 날고. // 마파람 스치면 / 뻐꾸기 울고 ..  (보리밭에서)


  오늘날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이문구 님이 이녁 아이들 사랑스레 마주하면서 동시를 쓰던 《개구쟁이 산복이》하고는 사뭇 다른 터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삶터가 다르대서 사랑이나 꿈이나 마음이 다르지 않아요. 도시 한복판에서 살든, 30층이나 50층 아파트에서 살든,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어린이로 살아온 어른이기에, 사랑과 꿈과 마음을 한껏 북돋울 수 있어요.


  날마다 먹는 밥을 헤아리면서 사랑을 떠올리면 돼요. 날마다 들이켜는 바람을 곱씹으면서 꿈을 살피면 돼요. 날마다 마주하는 아이들이나 옆지기를 얼싸안으면서 마음을 가꾸면 돼요.


.. 지나가시는 어른보고 / “아저씨.” / 하면 / 아저씨는 가시다 말고 / 돌아보셔요. / 내가 한 번 웃으면 / 아저씨도 한 번 / 웃으셔요 ..  (어떤 아저씨)


  어른들도 어른답게 놀고 노래하기를 바라요. 어른들은 어른다운 새 놀이를 짓고 새 노래를 빚으면서 하루를 일구기를 바라요. 어른들 누구나 어른답게 놀고 노래하면 시는 저절로 태어나요. 어른들 모두 어른다이 새 놀이를 짓고 새 노래를 빚으면서 하루를 일구면, 시도 소설도 그림도 만화도 사진도 영화도 연극도 눈부신 무지개빛 흩날리면서 지구별 포근하게 감싸는 이야기가 된다고 느껴요. 4346.7.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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