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을 걷는 마음

 


  어린 나날 돌아보면, 풀밭을 헤치며 걸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내가 밟을 풀밭이란 참말 어디에도 없습니다. 골목 한켠 시멘트나 아스팔트 깨진 자리에 들풀이 씨앗을 내려 자라기는 하지만, 이런 자리라 하더라도 풀을 밟을 일 없어요. 억지로 풀을 마구 밟지 않습니다.


  흙으로 된 학교 운동장은 워낙 많은 아이들이 곳곳을 밟고 뛰어노니 풀이 자를 틈 없습니다. 풀포기 조금 자랄라치면 어느새 어른들이 아이들 시켜 풀을 뽑도록 합니다. 도시에서 꽃밭이나 텃밭을 일군다 하더라도 어른들은 ‘어른 스스로 심은 푸성귀 씨앗이나 꽃 씨앗’이 아니라면, 다른 풀은 모조리 뽑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수백 수천 수만 가지 온갖 풀을 만날 자리가 없어요.


  논에는 벼만 자랄 수 없습니다. 밭에는 배추나 무나 당근이나 오이만 자랄 수 없습니다. 콩밭이나 고추밭에 콩이나 고추만 자랄 수 없어요. 다른 풀이 돋습니다. 아니, 모든 풀이 돋습니다. 저마다 다른 풀이 저마다 다른 날과 철에 맞추어 하나둘 돋아 해바라기를 하며 자랍니다.


  이 지구별에 온갖 사람이 살아갑니다. 아니, 이 사람도 살고 저 사람도 살아요. 이러한 꿈 품은 이러한 길 걷는 사람 있고, 저러한 꿈 빛내고픈 저러한 길 일구는 사람 있어요. 모든 풀은 저마다 사랑스럽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 살갑습니다. 모든 풀은 저마다 푸른 빛깔과 내음을 베풀고, 모든 사람은 저마다 맑은 이야기와 노래를 베풀어요.


  풀밭을 걷습니다. 이 풀 저 풀 스스럼없이 자란 풀밭을 걷습니다. 풀밭을 걷다가 살짝 발걸음 멈춥니다. 종아리와 발목을 스치는 풀을 내려다봅니다. 풀밭을 아이들과 걸어가며 생각합니다. 풀밭 한켠에 풀개구리 깃들어 풀노래 부르고, 풀밭 한쪽에 풀벌레 살아가며 풀노래 들려줍니다. 우리들은 이곳 풀밭에서 어떤 풀노래를 부르면서 풀살이를 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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