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책

 


  재미있는 책도 읽고 재미없는 책도 읽는다. 아름답구나 싶은 책도 읽고 안 아름답네 싶은 책도 읽는다. 즐거운 책도 읽고 안 즐거운 책도 읽는다. 사랑스러운 책도 읽고 사랑스러움이란 터럭만큼조차 안 보이는 책도 읽는다.


  어느 책이든 읽는다. 어느 책이든 나한테 스며들면서 이야기 한 자락 건넨다. 재미있는 책이라서 더 뜻이 있지 않고, 안 아름답네 싶은 책이라서 뜻이 덜하지 않다. 어느 책이든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목소리로 차분히 들려준다.


  다만, 이 책은 이러한 삶을 이렇게 보여주되, 나더러 이러한 길이 어떠한 빛이나 그림자가 되는가를 천천히 일깨운다. 저 책은 저러한 삶을 저렇게 보여주되, 나한테 저러한 길이 어떠한 몸짓이나 눈빛이 되는가를 가만히 속삭인다.


  착하면서 곱게 살아갈 길을 비추는 책이 있다. 착하지도 않고 곱지도 않은 모습에 휘둘리는 이야기를 자꾸 들려주는 책이 있다. 참다우면서 애틋한 꿈을 밝히는 책이 있다. 참답지 않은데다가 애틋함마저 없이 겉치레와 겉핥기로 가득한 수렁에서 허덕이는 책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책도 저런 책도 굳이 가리지 않는다. 내 앞에 있으면 모두 ‘책’이라고 여겨 한 차례 들춘다.


  아름다운 책이라면 내 손길이 오래도록 멎겠지. 사랑스러운 책이라면 내 손길이 두고두고 흐르겠지. 착한 책이라면 내 손길이 자꾸자꾸 닿겠지. 아름답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착하지 않은 책이라면, 내 손길은 처음 한 차례로 끝날 테지.


  모든 책도, 모든 삶도, 모든 사람도, 모든 사랑도,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마땅하다.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움을 들려주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사랑스러움을 나누며, 착한 사람은 착함을 빛낸다.


  꾸밈없이 생각하면서 스스럼없이 읽으면 된다. 거리낌없이 마주하면서 티없이 읽으면 된다. 내 삶을 밝히는 빛은 어디에서 환한가를 헤아리면서 읽으면 된다. 내 삶을 스스로 씩씩하게 밝히자고 다짐하면서 읽으면 된다. 모든 책은 뜻이 있어 도서관 책꽂이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는다. 모든 사람은 뜻이 있어 지구별 곳곳에 다 다른 모습으로 살림을 꾸린다. 4346.7.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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