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6.26.
 : 조용히 지나가는 길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이야기책 《삶말》 7호가 나왔다. 어제부터 부치려 했지만, 어제는 하루 내내 비가 오느라 자전거 몰아 우체국에 갈 수 없었다.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개어 날이 좋아, 아침부터 바지런히 책을 봉투에 싼다. 하루에 다 부치지는 못하니, 오늘은 마흔 통 즈음 꾸려서 천바구니에 담는다. 아이들은 밥 배불리 먹었고 이럭저럭 뛰놀았기에 자전거 태우고 마실을 가기에 딱 좋다.

 

- 작은아이는 마당에 자전거수레 내놓을 적에 발판 하나 붙잡고 빙빙 돌리기를 좋아한다. 딸랑이도 딸랑딸랑 쳐 보고 싶고, 이것저것 만지고픈 것이 자전거에 많이 달렸다. 수레 뒤로도 가서 무언가 들여다보고, 앞으로 와서 자전거 이것저것 살펴본다. 보라야, 늘 보고 늘 타는데, 오늘은 무엇이 새삼스럽고 새롭니?

 

- 마을길로 자전거를 끌고 내려선다. 이웃집 할머니가 작은아이 손을 붙잡고는 “야, 야, 우리 집에 와 봐라.” 하니까 작은아이가 낯을 찡그리며 울먹인다. 할머니가 작은아이 골리려고 하는 몸짓인데. 아버지한테 뽀르르 달려와서 수레에 타려고 용을 쓴다. “옳지, 옳지, 고놈 혼자 올라가려고? 잘 타네?” 이제 큰아이도 샛자전거에 탄다. “치마 잘 해야지?” 큰아이는 치마를 한손으로 쓸어서 앉는다. 자, 그러면 달려 볼까.

 

- 마을 어귀부터 이웃 신기마을 사이 비알진 길을 거뜬히 넘는다. 오늘도 몸은 좋구나. 면소재지로 가는 길은 맞바람이 분다. 아니, 맞바람이라기보다 여름바람이다. 시원하구나. 상큼하구나. 맑구나. 쑥쑥 자라는 벼포기를 바라본다. 어느새 저만큼 자라 들판이 푸른빛으로 가득하네. 어, 저기 해오라기인가? 자전거를 슬슬 세워 바라보려 하니 모두들 푸드득 날갯짓하며 날아오른다. 이렇게 멀리 떨어졌는데, 그래도 새들한테는 사람이 무서운가. 사람은 가까이할 만하지 못한 짐승이라고 여길까.

 

- 아직 논에 농약 안 치는 데가 많지만, 퍽 일찍 모내기를 한 논에는 농약을 치기도 한다. 저 새들은 이 논자락 가운데 농약 친 곳과 안 친 곳을 알까. 농약 친 곳에서는 개구리나 미꾸라지 함부로 잡아먹으면 안 될 텐데, 농약에 물든 개구리를 먹으면 저 새들도 배앓이를 하다가 죽을 텐데, 농약을 치며 새를 걱정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 작은아이는 잠이 든다. 우체국에 닿을 무렵 깊이 잠든다. 수레에 하얀 담요를 씌워 햇볕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책을 부친다. 이만천 원 나온다. 이번에는 가벼운 책이라 우표값 조금만 든다. 면소재지 길을 조금 걷는데 면소재지도 흙길 아닌 시멘트길이요, 자동차가 그리 많이 안 다니지만 이래저래 지나가니까 후끈후끈하다. 못 걷겠구나 싶어 큰아이더러 샛자전거에 앉으라 하고 빵집으로 달린다. 빵집에서 쌀바게트와 네모빵을 산다. 면사무소에 들러 홍보물 있으면 챙길까 하다가, 작은아이가 잠든 만큼 집으로 바지런히 돌아가자고 생각한다.

 

- 면소재지를 벗어날 무렵, 도화중학교 맞은편 멧기슭에서 피어나는 치자꽃을 본다. 밤꽃내음은 많이 가셨다. 치자꽃은 무리지어 곳곳에 피어 하얀빛 뽐낸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에 구름 몇 점 뭉게뭉게 일어나는 빛하고 곱게 어우러진다. 한여름 하얀빛은 이렇게 맑으면서 곱구나. 우리 옛 겨레가 흰옷 즐겨입은 까닭을 헤아릴 만하다. 실을 뽑자면 그예 흰실이었을 테니 흰천을 짜서 흰옷을 짓기도 했을 테지만, 온갖 풀잎과 꽃잎으로 알록달록 물들일 만도 하지만, 따로 물들이기보다 흰옷 그대로 입은 까닭을 곰곰이 돌아본다. 이 무더운 여름에 흰옷을 입어야 햇살을 조금이라도 덜 쐬면서 마음으로도 한결 맑은 빛 건사할 수 있겠구나 싶다. 우리 겨레 흰옷은 여름철에 가장 잘 어울리지 싶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호덕마을 지날 즈음, 자전거 뒷등이 톡 떨어진다. 자전거를 세워 주으려 하니, 큰아이가 달려가서 주워 준다. 큰아이가 쉬 마렵다 해서 논둑에서 쉬를 누인다. 쉬를 눈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여기 찻길인데 왜 차가 안 다녀요.” “응, 우리 조용히 지나가려고 자동차 지나가지 말라고 했어.” 누구한테? 훗, 하느님한테 말했지. 우리들 자전거 타고 조용히 지나가면서, 풀섶에서 자전거 부웅 하며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노란나비 개망초꽃에 앉았다가 폴랑 하며 조그맣게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싶으니, 이렇게 이 찻길에 자동차 안 다니기를 바란다고 아버지는 스스로 마음속에 대고 말한단다. 참말, 버스를 타든 자동차를 타든 택시를 타든, 차에서는 잠자리 날갯짓이나 나비 날갯짓 소리 조금도 못 듣는다. 해오라기 훨훨 날아가는 소리도 못 듣고, 바람 따라 풀잎 눕는 소리도 못 듣는다. 고운 소리를 듣고 싶어 자전거를 천천히 달린다. 맑은 소리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자전거마저 세운 채 천천히 걷는다. 풀바람 듬뿍 쐬며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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