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나비 책읽기

 


  흙길은 숨을 쉬는 길입니다. 흙길에서는 수많은 목숨이 곱게 얼크러져 살아갑니다. 찻길은 숨이 막히는 길입니다. 찻길에서는 수많은 목숨이 그예 숨통이 끊어지면서 슬픈 죽음수렁이 됩니다.


  흙길에서는 풀과 벌레와 나비가 서로 동무하듯 얼크러집니다. 찻길에서는 풀도 벌레도 나비도 깃들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제 막 허물을 벗고 따끈따끈한 길바닥에서 몸과 날개를 말리려다가 그만 하루아침에 목숨을 빼앗깁니다.


  자전거를 끌고 흙길을 지나가면 푸른 바람이 온몸을 따사롭게 간질입니다. 자전거를 몰고 찻길을 달리면, 길섶에 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작은 벌레와 나비와 벌과 조그마한 짐승들 주검이 그득합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까지 알아봅니다. 개미를 안 밟으려고 요리조리 비끼며 달립니다.


  그런데, 자전거를 달리든 두 다리로 걷든, 길바닥 개미뿐 아니라 나비와 벌레조차 못 알아보거나 안 알아채는 사람이 퍽 많아요. 사람이 길을 거닐며 ‘앞을 바라보’지 ‘밑을 내려다보’지는 않는다 하겠지만, 참말 길바닥과 흙바닥 이웃 숨결을 살뜰히 헤아리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맨발로 걷는다면 길바닥을 쳐다볼까요. 고무신을 신으면 흙바닥을 살필까요. 맨발이거나 짚신이거나 고무신이라 하더라도 흙땅을 차분히 느끼려는 사람은 없을까요. 우리 집 앞마당에서 범나비가 깨어난 뒤로 범나비 바라보느라 밥하기를 잊곤 합니다. 범나비 날갯짓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범나비 날개무늬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이토록 고운 무늬가 태어나기까지 범나비 한 마리는 어떻게 꿈을 꾸고 어떻게 삶을 빚었을까요. 4346.6.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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