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1: 1928 ~ 1946
반 토시오, 테즈카 프로덕션, 아사히 신문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50

 


숲과 노래를 들으며 자란 하느님
―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1 : 1928∼1946
 반 토시오+테즈카 프로덕션 글·그림,김시내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3.6.25./11000원

 


  만화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에 가면 만 가지 책 가운데 구천 가지 남짓은 일본만화이지 않을까 하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이 그린 한국만화가 이럭저럭 있으나, 한국사람이 그린 한국만화만 갖고는 만화책방을 꾸릴 수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웃 일본에서 그린 일본만화가 있기에 비로소 만화책방을 꾸릴 수 있구나 싶어요.


  한국말로 나온 일본만화 숫자를 헤아린다면, 한국사람도 만화책을 무척 좋아한다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정작 한국만화는 그리 많이 태어나지 않고, 그렇게 널리 사랑받는다고는 느끼지 못합니다. 몇몇 작가 몇몇 작품은 좀 지나치다 싶도록 사랑받으나, 여러 작가 여러 작품이 골고루 사랑받지 못해요.


  왜 그러할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테즈카 오사무 이야기 1 : 1928∼1946》(학산문화사,2013)를 읽는 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깨닫습니다. 일본에는 데즈카 오사무(테즈카 오사무) 님이 있었지만, 한국에는 데즈카 오사무 님이 없었어요.


- 일본인은 왜 이렇게나 만화를 좋아할까. 외국인의 눈에는 매우 이상하게 보인다고 한다. 왜 외국인은 지금까지 만화를 읽지 않았던 걸까. 한 가지 답은 그들의 나라에 테즈카 오사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5쪽)
- “테즈카가 또 만화를 그렸나요?” “한 번 보시겠어요? 꽤 재밌습니다.” … “테즈카! 잠깐 기다리렴. 자, 이건 돌려주마. 너는 어른이 되면 만화가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만화를 많이 그리렴.” (40쪽)

 


  만화가로 일하며 아름다운 작품 남긴 분들이 한국에도 퍽 많습니다. 여러 사람 이름을 죽 들 만합니다. 그러면 이 수많은 만화가 가운데 한국만화 흐름과 틀과 결을 크게 바꾸었다 할 사람으로 누구를 꼽을 만할까요. 언제나 꾸준하게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면서 ‘만화로 읽는 삶’을 꽃피운 만화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만화를 읽는 사람들한테 생각날개 북돋우면서 꿈과 사랑을 따스하게 들려주는 만화가로 누구를 꼽을 만할까요. 전쟁과 독재와 반민주를 미워하면서 평화와 자유와 민주를 노래한 만화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느끼고 누리면서 착하고 참다운 길 걷도록 만화책 하나로 이끈 만화가로 누구를 꼽을 만할까요. 어린이와 어른 모두 즐겁게 읽으며 눈물과 웃음 샘솟도록 이끈 만화가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이름을 드날리는 만화가라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작품을 많이 파는 만화가라 해서 뛰어난 사람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를 그릴 때에 비로소 훌륭하다고 느껴요. 사랑과 꿈을 만화 하나에 살포시 담아 나눌 수 있을 때에 바야흐로 뛰어나구나 싶어요.


  한국에도 만화가는 많지만 ‘만화를 그리는 하느님’이라고 일컫거나 손꼽을 만한 분은 아직 없습니다. 한국에도 만화가를 꿈꾸는 젊은이는 많으나 ‘만화를 그리는 하느님’이 되려고 힘과 슬기와 사랑을 쏟는 분은 아직 없습니다.


- “어머나, 공책을 벌써 다 썼니? 지금 새 공책을 줄게. 기다리렴.” 너무 금방 (공책을) 써 버리는지라 어머니는 매번 지우개로 그려진 그림을 지워서 돌려주었답니다. (13쪽)
- 어머니는 툭하면 우는 오사무 소년을 절대 혼내지 않았습니다. “참고, 참고, 또 참으렴.” 이렇게 해서 괴로울 때도 웃으며 참아내는, 인내심 강한 성격이 길러졌다고 합니다. (27쪽)

 


  데즈카 오사무 님이 손수 쓴 산문책에도 잘 나오는데, 데즈카 오사무 님이 태어나서 자란 삶터를 돌아보면, 도시가 아닌 시골입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나이를 제법 먹을 무렵까지 시골 들판을 신나게 누빕니다. 숲에서 놀고 들에서 뛰며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풀벌레를 바라보고 하늘노래 들으며 숲소리를 받아먹습니다.


  하늘에 해가 걸린 동안에는 숲에서 지낸다 할 만하고, 하늘에 해가 떨어진 뒤에는 도서관과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지요. 데즈카 오사무 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을 터이며, 일본이 바보스러운 전쟁 일삼느라 나라살림 빠듯했을 터인데에도, 이녁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책을 꾸준하게 사서 읽’히고, 영화를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 어머니는 이녁 아이한테 손수 만화를 그려 주기도 하고, 늘 아름다운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습니다.


  푸른 숲과 푸른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란 데즈카 오사무 님이에요. 너른 들과 너른 꿈을 맞아들이며 큰 데즈카 오사무 님입니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데즈카 오사무 님뿐 아니라, ‘일본에서 손꼽는 훌륭한 만화가’들은 이처럼 두 가지 빛을 받으면서 어린 나날을 보내어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요. 하나는 숲(자연)에서 받은 빛이고, 다른 하나는 집(어버이)한테서 받은 빛입니다.


- “테즈카, 힘들겠다.” “제길, 맹세코 군대 따위 절대 안 들어갈 거야!” 그래도 두 번 다시 칠판에 낙서를 안 하겠단 맹세를 안 했습니다. (98∼99쪽)
- “시판 곤충도감은 아무래도 성에 안 찬단 말이지. 좋아, 스스로 하나 만들어 보자! 재밌는 아이디어야. 해 보자!” 지금처럼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림으로 그린다 하면 매우 세밀한 그림이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려울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걸 보십시오. 가는 펜과 선으로 치밀하게 채색했습니다. 테즈카 오사무가 직접 그린 딱정벌레 도감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127쪽)

 

 


  숲하고 살아가면서 마음속에서 하느님이 자랍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속에서 하느님이 웃습니다. 숲바람을 쐬면서 마음속에서 하느님이 즐겁습니다. 노래에 담긴 사랑을 느끼면서 가슴속에서 하느님이 함께 노래합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어른도 누구나 하느님과 같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다른 아이들만 하느님이 아닙니다. 모든 아이들이 하느님입니다. 곧,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누구한테나 마음속에 하느님이 깃들기에, ‘어린이 마음을 잘 추스르며 보살피고 사랑한다’면, 어른이 되어도 아름다운 빛을 스스로 누리면서 이웃하고 나누어요. 아니, 어른이 되는 동안 마음속 하느님을 한결 빛내고 밝히면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삶을 일굽니다.


  일본에서 훌륭하다고 손꼽는 만화가가 퍽 많은 대목을 잘 살피면, 데즈카 오사무 님을 비롯해 다른 모든 훌륭한 만화가들 가슴속에서 하느님이 싱그럽게 웃으면서 해맑게 노래합니다. ‘어린이 마음’을 어른으로 지내는 동안에도 즐겁게 아끼고 신나게 북돋웁니다.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늘 어린이입니다. 몸은 어른이라 하더라도 어린이와 어깨동무하면서 신나게 놀 줄 압니다.


  말투를 귀엽게 한대서 어린이 같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잘 알아들을 만한 눈높이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며 나눌 때에 어린이 마음이지요. 낱말 하나부터 찬찬히 살피고, 몸가짐 하나도 가만히 돌아봅니다. 밥을 차려서 먹을 때에도, 자전거를 탈 때에도, 걸어서 마실을 다닐 때에도, 언제나 ‘어린이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 자동차를 몬다 하더라도, ‘어린이 마음’으로 자동차를 몰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시장이 되거나 군수가 되더라도, 어린이가 정치를 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 아버지가 출정한 후, 혼자 집안을 떠받치는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란 위대한 존재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후에 의사와 만화가를 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 어머니의 한 마디로 결정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130쪽)
- 그의 할아버지는 법률가였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매우 두꺼운 법률서에 파라락 만화를 그려 버렸습니다. 만화 그리기에 열중한 나머지 병에 걸려 드러누웠을 때에도 파라락 만화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만화 보고 싶어요!” “열이 나니까 지금은 일어나면 안 돼.” “그래도 보고 싶어요.” “그렇게 보고 싶으면 엄마가 그려 줄게.” 글쎄, 어머니가 방에 틀어박혀 파라락 만화를 그렸습니다. (174쪽)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하거나 일을 하면 돈조차 벌기 어렵습니다. 돈을 이럭저럭 손에 쥔다 하더라도 몸이 고단하고 마음이 힘들어요. 돈은 돈대로 벌려 하더라도, 장사가 즐거워야 하고 일이 기뻐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 되어 장사를 할 때에 어린이 마음이에요.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해야 어린이 마음입니다. 즐겁지 않거나 기쁘지 않다면 바로 생각해야 해요. 내가 선 자리가 아름다운가 안 아름다운가 하고 스스로 살펴야 해요. 내가 부르는 노래가 내가 듣기에 반가운가 안 반가운가 하고 스스로 헤아려야 해요.


  손재주로는 만화를 못 그려요. 손재주로는 손재주만 부려요. 손재주로는 글도 못 쓰고 사진도 못 찍어요. 손재주로는 손재주 부리는 글이나 사진만 얻어요.


  만화를 그리든,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언제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나눌 뿐이에요. 작품을 만들려고 해서는 작품조차 안 되지요. 작품이 아닌 내 마음속 이야기를 길어올려서 만화가 되고 글이 되며 사진이 되어요. 이웃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만화나 글이나 사진이라는 틀을 빌어 들려줍니다. 스스로 하고픈 이야기를 만화나 글이나 사진이라는 얼거리에 맞추어 꽃피웁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만화입니다. 이야기가 있기에 글입니다. 이야기가 있어 사진이 되고, 노래가 되며, 춤이 됩니다. 다른 만화가들이 만화에 이야기를 못 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만화가들은 데즈카 오사무 님에 앞서 아직 ‘이야기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 아니 ‘이야기가 있을 때에 만화가 만화로 되는’ 줄 깊이 깨닫지는 않았어요. ‘만화를 그리는 까닭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싶기 때문’인 줄 넓게 돌아보지 못했어요.


  데즈카 오사무 님이 건드린 대목은 바로 ‘이야기’예요. 그리고, 이야기를 건드리되 ‘사랑’으로 어루만져요. 사랑으로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꿈’으로 마무리지어요. 이야기를 사랑으로 어루만지면서 꿈으로 마무리를 짓는 삶을 천재 한두 사람 아닌 수수한 여느 사람 누구나 이룰 수 있다고 보여주어요.


- 데즈카 오사무는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계속 만화를 그립니다. 완성한 장편만화를 손수 제본해서 여러 권의 ‘테즈카 오사무 만화총서’를 만들었습니다. 천으로 커버를 씌운 이 아름다운 자가제작 만화를 본 친구들은 참신한 내용에 매우 놀랐답니다 … 테즈카 오사무는 장편만화를 계속 그려 갔습니다. 출판이 목적인 것도 아니고, 그저 손수 책으로 엮어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을 즐길 뿐이었습니다. (184∼185쪽)
- 테즈카 오사무는 그런 것에 국한되지 않고 슬픔이나 분노, 그리고 증오라는 주제도 표현했습니다. (222쪽)

 


  숲과 노래를 들으며 자란 하느님은 숲과 노래를 이야기합니다. 숲과 노래에 둘러싸여 자란 하느님은 숲과 노래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숲과 노래를 벗삼아 살아가는 하느님은 숲과 노래를 한껏 즐기면서 좋아합니다.


  오늘날 한국 아이들은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이야기할까 궁금합니다. 오늘날 한국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어른 스스로 무엇을 누리는지 궁금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기에 ‘데즈카 오사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데즈카 오사무’가 될 수 있고 ‘하느님’이 되며 ‘내’가 되어요. 데즈카 오사무 님은 언제나 가장 ‘데즈카 오사무’다운 삶을 생각하며 만화를 그렸기에 하느님이 되었어요.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찬찬히 깨닫고 생각하면서 ‘나’다운 삶으로 나아가야지 싶어요. 내가 나다울 때에 나이지, 내가 나답지 않다면 내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 이야기를 느끼면서, 내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하느님이 부르며 즐기고픈 노래를 알아차릴 때에, 나다운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4346.6.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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