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9] 흙에서 빚은 말

 


  시골에서 흙 만지던 손으로 빚은
  벼와 보리와 감자와 무와 마늘 같은 숨결에
  사랑과 꿈과 믿음과 빛 같은 어여쁜 낱말들.

 


  옛날부터 임금님은 낱말을 빚지 않았습니다. 명령만 내렸습니다. 옛날부터 지식인이나 학자는 낱말을 일구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글로 어려운 책만 썼습니다. 옛날부터 권력자는 낱말을 보듬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더 단단하고 크게 키우는 데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옛날부터 낱말 하나 빚은 사람은 시골에서 흙을 만진 할매와 할배입니다. 흙을 만져 삶을 짓고, 낱말을 지었어요. 옛날부터 낱말 하나 일군 사람은 시골에서 아이 낳아 돌본 여느 어버이였어요. 아이들 낳아 사랑으로 돌보며 키우는 동안, 이녁 마음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사랑을 낱말 하나하나에 담았어요. 옛날부터 낱말 하나 보듬은 사람은 시골 어린이예요. 시골에서 흙 만지는 할매와 할배한테서 사랑을 받고, 시골에서 흙 가꾸는 어매와 아배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아이들은 가장 맑고 밝은 넋으로 즐겁게 새 낱말을 보듬었습니다. 4346.6.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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