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이야기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모르곤 한다. 왜냐하면, 어느 책 하나를 장만하거나 빌려서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다’고 해서 ‘책을 읽는다’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책이든 그 책 하나만 읽으려 해서는 제대로 못 읽는다. 어떤 책이든 그 책 하나를 ‘읽으려’고 한다면, ‘그 책 하나 쓴 사람’이 걸어온 삶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서 책날개에 적힌 글쓴이 발자취를 찬찬히 읽으면서 깊고 넓게 헤아리며 비로소 책읽기를 한다. 책에 깃든 줄거리를 훑을 적에도 ‘책에 적힌 글’만 훑는다고 ‘책을 읽는다’고 말할 수 없다. 책에 적힌 글이 태어나기까지 여러모로 스미고 깃든 ‘수많은 스승과 길동무 이야기’를 글줄에서 읽어내야 한다.


  리영희 님만 ‘글 한 줄 쓰려고 책 너덧 권 읽지’ 않는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글 한 줄 쓰려고 책 여러 권 읽는’다. 다만,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책 여러 권 읽어 글 한 줄 아름답게 쓰고, 어떤 사람은 슬픈 책 여러 권 읽어 글 한 줄 슬프게 쓰며, 어떤 사람은 시커먼 꿍꿍이 같은 책 여러 권 읽어 글 한 줄 시커먼 꿍꿍이 담아서 쓴다.


  모든 사람 모든 글에는 ‘수많은 다른 책’이 살포시 감돈다. 글 한 줄에 숨은 다른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곧, 어느 책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과 이야기와 삶과 사랑을 고루 살펴야 비로소 책 하나 읽을 수 있다. 숱한 이야기를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책 하나 읽었다 말할 수 없다.


  책읽기는 아주 쉬우면서 아주 안 쉽다. 책읽기가 아주 쉬운 까닭은, 나를 둘러싼 내 이웃 아름다운 삶을 만나는 즐거운 이야기잔치이기 때문이다. 책읽기가 아주 안 쉬운 까닭은, 사랑하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줄거리만 겉훑으려고 할 적에는 조금도 아무것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4346.5.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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