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21] 돈읽기
― 남한테서 무엇 하나 얻을 적에


 

  나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돈을 법니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기도 하고, 내가 찍은 사진을 누군가 사들이기도 해서, 이럭저럭 돈을 법니다.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벌되, 돈을 안 받고 글을 보내기도 합니다. 가난한 살림에 뜻있는 일을 하는 모임이 있으면 자원봉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서 보냅니다. 사진도 이와 같아요. 애써 찍은 사진들을 아무 돈을 안 받고 보내곤 합니다.


  거꾸로 보면, 나도 내 둘레 사람들한테서 돈을 받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곱게 바라보는 분들은 내가 시골마을에서 꾸리는 사진책도서관 튼튼하고 씩씩하게 이을 수 있도록 도움돈을 보내줍니다. 도서관이 좋은 자리 얻도록 밑돈을 보태어 줍니다. 도서관 꾸리는 살림돈을 요모조모 보태어 줍니다. 도서관 새 책꽂이 들이는 돈을 보태어 줍니다. 그러면 나는 도서관 소식지라든지 내가 내놓은 책들을 이웃들한테 보내거나 선물합니다.


  내 글 한 꼭지는 원고지 열 장이 되기도 하고 원고지 백 장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에는 원고지 열 장짜리 글을 써서 30만 원 값을 받습니다. 어느 때에는 원고지 백 장짜리 글을 써서 거저로 주기도 합니다. 내 사진 한 장에 50만 원 값을 받기도 하면서, 내 사진 서른 장을 거저로 주기도 합니다. 어떤 일이든 꼭 돈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꿈과 사랑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고 이름도 있으며 힘도 있는 사람이나 모임에서 나한테 ‘공짜 글’을 써 달라 할 때가 있고, ‘공짜 사진’을 보내 달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는 딱 잘라 이야기합니다. 이녁한테 돈도 이름도 힘도 없으면 얼마든지 글과 사진을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보낼 테지만, 이녁한테 돈도 이름도 힘도 다 있는데, 내가 왜 이녁한테 아무 돈을 안 받고 글이나 사진을 주어야 할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돈도 이름도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일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푸념을 하는 소리를 듣는 자리에서는 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뜻있는 일을 하려는 그 마음을 더 깊이 엮어, 뜻있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즐겁고 슬기롭게 버는 생각도 함께 해 보셔요, 하고요.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돈을 벌어야 맞거든요.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돈을 벌어야 참말 아름답지요.


  남한테서 무엇 하나 얻을 적에는, 나도 남한테 무엇 하나 건넵니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깨끗한 종이 한 장 얻어 그 자리에서 시를 한 가락 씁니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며 누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그때그때 시를 한 가락 씁니다. 또는 내가 찍은 사진 가운데 내 마음을 아주 넉넉히 살찌우는 작품을 골라서 선물로 보냅니다.


  밥 한 그릇 만나게 얻어먹으면, 설거지를 맡아서 하거나,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 방바닥을 훔치거나 먼지를 닦습니다. 몸을 써서 날라야 할 짐이 있으면 함께 나르고, 이것저것 종이 한 장 맞드는 마음 되어 어깨동무를 합니다. 내 동무들도, 내 이웃들도 서로서로 같은 마음이겠지요. 저마다 즐겁게 얻어서 누리고, 저마다 즐겁게 손을 내밀어 함께 일을 해요. 다 함께 즐겁게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기쁘게 웃으면서 사랑과 꿈을 돈 한 푼에 실어 나눕니다.


  내 주머니에 돈 한 푼 있으니 한 푼을 반으로 갈라 함께 씁니다. 이녁 주머니에 돈 두 푼 있으니 두 푼을 반으로 갈라 함께 써요. 넉넉히 있으니 나눈다고 할 수 있지만, 넉넉하지 않더라도 스스럼없이 나눕니다. 많고 적고는 대수롭지 않아요. 마음이 대수롭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추스르면서, 환하게 웃는 어깨동무를 생각합니다.


  돈이란 나눌수록 즐겁습니다. 돈이란 함께할수록 커집니다. 왜냐하면, 돈이란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서 쓰거든요. 사람들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숨결이고, 사람들은 꿈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목숨이에요. 곧, 사람들은 돈이라는 물건 하나에 사랑과 꿈을 담습니다. 사랑과 꿈은 돈을 징검돌 삼아 이 사람한테서 저 사람한테 갑니다. 저 사람한테서 이 사람한테 옵니다. 4346.5.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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