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 기와장이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3
유다정 지음, 권문희 그림 / 사파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4

 


아름다움을 꿈꾸는 삶
― 동에 번쩍
 권문희 그림,유다정 글
 사파리 펴냄,2007.9.5./9800원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날마다 마음속에 ‘아름다움’이라는 생각 한 줄기 담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적부터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낮에 일하는 동안 아름다움을 되새깁니다. 저녁에 잠들면서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꿈꿉니다. 아침 낮 저녁으로 아름다움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몸과 마음 모두 아름다움으로 물들어요.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겉모습이나 얼굴이나 몸매를 이쁘장하게 치레하는 일이 아름다움일까요. 돈을 많이 벌 때에 아름다움일까요. 이름값을 높이거나 졸업장·자격증 많이 거머쥘 때에 아름다움일까요. 옷을 잘 차려입거나 까맣고 큰 자가용 몰 때에 아름다움일까요. 어떤 모습이 아름다움일까요.


  눈으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귀로도 아름다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코로도 아름다움을 맡고, 살갗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푸르게 빛나는 잎사귀를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마주합니다. 사락사락 물결치듯 노래하는 바람과 풀잎을 귓결로 느끼며 아름다움을 떠올립니다. 해맑은 꽃망울 살며시 건드리면서 아름다움을 만납니다.


  잘 차려입은 옷차림이나 잘 가꾼 몸매는 눈을 살짝 감으면 아무것 아닙니다. 크고 까만 자가용이라든지 곁에 딸린 심부름꾼 또한 눈을 가만히 감고 귀를 살며시 닫으면 아무것 아닙니다. 졸업장도 자격증도 이와 같아요. 은행계좌이든 지갑 부피이든 이와 같습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운 사람한테 돈벌이란 무엇이요, 돈쓰기란 또 무엇이 될까요. 갓난쟁이한테 주식투자란 무엇이며, 연금이나 보험이란 무엇이 되나요.


  삶을 볼 수 있으면 사랑을 볼 수 있고, 사랑을 살그마니 보면서 아름다움 또한 살그마니 봅니다. 삶을 아낄 수 있으면 사랑을 아낄 수 있고, 사랑을 찬찬히 아끼면서 아름다움 또한 살그마니 아낍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아름다움 한껏 누리며 삽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면서 내 곁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하루를 빚습니다. 아름다움을 꿈꾸면서 내가 할 일을 즐겁게 찾습니다. 아름다움을 나누면서 내가 걷는 이 길을 슬기롭게 다스립니다.


.. 동에번쩍은 노인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어. “어?” 오래전 자기를 태어나게 해 준 바로 그 아저씨였던 거야 ..  (6쪽)

 

 

 


  권문희 님 그림과 유다정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동에 번쩍》(사파리,2007)을 아이들과 읽으며 생각합니다. 늙은 기와장이가 한창 젊을 적에 구워서 얹은 기와 한 장하고 얽힌 이야기를 살살 풀어냅니다. 늙어 몸져누운 기와장이는 한창 젊을 적에 기와를 구우면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언제나 웃으면서 일했습니다. 기와로 구울 흙을 찾으면서, 흙을 살피면서, 흙을 만지면서, 기쁘며 밝은 마음 되어 어떤 기와 한 장 빚을는지 꿈꿉니다. 그리고, 이녁이 굽는 기와에 이름을 붙입니다. 이녁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 하나 붙입니다.


  즐겁게 일하면서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 기쁘게 노래하면서 사랑을 나눕니다. 이리하여, 도깨비 기와 한 장에서 도깨비 넋 하나 태어나고, 도깨비 넋 하나는 사람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재미나게 새 삶 빚습니다.


.. “고맙고 고마운 우리 아저씨, 뜨겁게 가마 달구느라 잠 못 자고 고생했으니 열 냥! 가슴에 품어 따뜻한 혼을 불어넣어 주었으니 열 냥!” ..  (17쪽)


  어느 분이 쓴 시나 소설이나 산문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불러 줄 때에 서로서로 한껏 빛납니다. 이름 몇 글자 아무개, 하고 불러도 빛나지요. 그런데, ‘사람’이라 불러도, ‘동무’나 ‘벗’이라 불러도, ‘이웃’이라 불러도, ‘옆지기’라 불러도, ‘일꾼’이나 ‘살림꾼’이라 불러도, ‘아이’라 불러도, ‘어버이’나 ‘아버지’나 ‘어머니’라 불러도, 따사로운 숨결 몽실몽실 자랍니다. 들꽃 이름을 잘 모른다고요? 그러면 ‘들꽃’이라 하거나 ‘꽃’이라 하셔요. 나무 이름을 잘 모른다고요? 그러면 ‘나무’라 하거나 ‘숲나무’라 하거나 ‘마을나무’라 하셔요.


  내 가슴속에서 가장 따사롭고 넉넉하게 피어나는 이름을 떠올리면서 불러요. 내 가슴속에서 가장 즐겁고 환하게 빛나는 이름을 되새기면서 불러요.


  어떤 틀에 맞추어 부르는 이름은 없어요. 어떤 얼거리에 따라 짜야 하는 이름은 없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이름 하나 지어 베풀지요. 아이는 스스로 자라면서 제 이름을 새롭게 하나 짓지요. 아이를 둘러싼 이웃이나 동무는 아이를 바라보며 재미있고 살가운 이름 하나 새롭게 붙이지요.


.. “동에번쩍아, 너였구나! 고맙다. 맛있게 먹으렴.” 아저씨는 담장 위에 메밀묵 한 그릇을 올려놓았지 ..  (33쪽)

 


  아름다움을 꿈꾸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주고받을 이름을 얻습니다. 아름다움을 꿈꾸는 삶일 때에 스스로 가장 빛나는 하루를 누립니다.


  대통령이라야 아름다운 하루 아닙니다. 볍씨를 심고 씨감자를 묻을 때에도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마늘쫑을 뽑고 미나리를 뜯을 적에도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밥을 지으면서, 아이들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기면서, 제비 노랫소리를 듣고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면서, 언제나 아름다운 하루입니다.


  자가용 하루쯤 내려놓아요. 버스나 전철도 하루쯤 멀리해요. 두 다리로 걸어요. 천천히 걸어요. 내 보금자리부터 내 일터나 배움터로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다녀요. 내 좋은 벗 만나러 마실을 가는 길에 자가용이든 버스이든 전철이든 타지 말고,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든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 가든, 이 아이들 자가용으로 태우지 말고, 버스나 전철도 타지 말라 해 보아요. 아이 스스로 두 다리 씩씩하게 걸어서 다니라 해 보아요.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봅니다. 보금자리를 사랑하고, 마을을 사랑하며, 지구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집과 마을과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꿈을 아름답게 일굴 수 있습니다. 4346.5.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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