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빛

 


  다 다른 해에 태어난 다 다른 책이 다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 다 다른 크기와 다 다른 모양새로 나온 책들이 알록달록 빛나는 책탑을 이루며 차곡차곡 쌓인다. 높다라니 쌓인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어떤 무늬와 빛깔로 있을까. 책탑 뒤에는 어떤 책들이 오래도록 숨죽인 채 책손 손길을 기다릴까.


  책은 책으로 있는 동안에도 빛난다. 책은 책손 손길을 타면서 새롭게 빛난다. 책은 책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이끌려 새로운 책시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삼스럽게 빛난다.

  읽힐 때에 비로소 책이라 하는데, 읽히지 않을 때에도 모두 책이다. 왜냐하면, 읽히지 않은 책은 없으니까.


  읽혔다 하는 책 가운데 속내와 사랑과 마음까지 샅샅이 읽힌 책은 얼마나 될까.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줄거리 줄줄 꿰는 일이 책읽기가 아니다. 책에 서린 삶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깃든 숨결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책에 감도는 사랑을 읽을 때에 책읽기가 된다.


  몇 줄을 읽든 대수롭지 않다. 여러 차례 읽거나 스물 서른 마흔 차례 읽든 대단하지 않다. 가슴으로 읽고, 마음으로 새기며, 사랑으로 헤아릴 때에, 비로소 책읽기가 이루어진다. 책빛은 책읽기를 누리는 사람들 눈망울에서 곱게 드러난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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