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못한 책을 사다

 


  처음 만난 지 일곱 달 지나도록 사들이지 못하고 멀거니 구경만 하던 사진책을 드디어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다. 참 뜻밖에, 아주 뜻밖에 만난다. 그런데, 다른 헌책방에서 만난 이 사진책을 가만히 올려다보니, 꽂힌 모습으로 보건대 퍽 여러 해 그 자리에 있은 듯하다. 몇 해쯤 먼지 먹으며 있었을까. 다섯 해? 열 해? 열다섯 해?


  예전에 이 헌책방에 찾아왔을 적에도 이 사진책은 저 자리에 멀쩡히 있었을 테고, 내 눈이 요 사진책을 여태 못 알아보았을 뿐이로구나 싶다.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서 받침대 구실을 하며 먼지만 먹던 책을 꺼낸다. 헌책방 일꾼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천천히 꺼내어 준다. 이 사진책 위에 얹힌 무거운 다른 책을 옆으로 옮긴 뒤 내려 준다.


  겉상자를 하나씩 연다. 두 겹으로 된 겉상자를 벗기니 서른 해 남짓 묵었어도 빛 하나 바래지 않은 예쁜 알맹이 나온다. 얼른 겉상자 다시 입힌다. 셈대 옆에 살짝 세운다. 이리 보아도 좋고 저리 보아도 좋구나. 이 책 하나 내 품에 들어오면서 내 마음 조금 더 연다. 4346.5.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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