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꽃 책읽기

 


  우리 집 꽃밭에서 초피나무 세 그루 자란다. 아마 처음에는 한 그루였을 테지만 이내 두 그루 되었고 새삼스레 세 그루 되었지 싶다. 앞으로 네 그루 다섯 그루 될 수 있겠지. 초피나무에서 맺는 열매 톡톡 흙땅으로 떨어지며 씩씩하게 자라니까.


  씨앗에서 튼 어린 초피줄기 곧잘 뜯어서 먹곤 했다. 풀인지 어린나무인 줄 모르는 채 뜯어서 먹었다. 조그마한 풀포기인데 퍽 알싸하구나 하고 느꼈다. 어리든 크든 초피는 초피로구나 하고 나중에 깨달았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느티나무에 맺힌 꽃망울 모두 떨어졌다. 이러면서, 초피나무에 꽃망울 앙증맞게 돋는다. 느티꽃은 우람한 나무와는 달리 아주 조그마했고, 초피꽃도 아주 조그맣다. 아직 우리 집 초피나무는 그리 굵거나 크지 않으니 ‘작은 나무에 작은 꽃’이라 여길 수 있는데, 앞으로 스무 해 지나고 백 해 지나며 오백 해 지나고 보면, 우리 집 초피나무에서 맺는 초피꽃을 바라볼 적에도 ‘큰 나무에 작은 꽃’으로 느끼리라 본다.


  잎사귀 사이사이 살그마니 고개를 내미는 초피꽃은 어떤 넋일까 생각한다. 벌이나 나비는 초피꽃에 내려앉을 수 있을까. 개미들 볼볼 기어다니며 초피꽃 건드려야 꽃가루받이가 될까. 바람 한 숨 살짝 불어 초피나무 가지 가만가만 흔들면 초피꽃은 즐겁게 꽃가루받이 이룰까. 푸른 잎사귀에 서리는 풀빛을 먹고, 푸른 꽃망울에 내려앉는 풀볕을 마신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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