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책
새벽이랄까 밤이랄까, 한 시 오십사 분에 잠을 깬다. 너무 일찍 하루를 연달 수 있지만, 식구들 시골집에 있는 동안 부산으로 마실을 와서 여러 가지 볼일 보는 만큼, 한결 즐겁고 바지런히 움직이려고 생각한다. 이틀째 부산에 머물며 몸뚱이에 깃든 때와 먼지를 씻는다. 머리를 감는다. 시골집에서 지낼 적에는 사나흘에 한 차례 머리를 감더라도 머리카락 엉기거나 떡지는 일 드문데, 도시로 마실을 오면 하루만 지나도 머리가 푸석푸석 힘을 잃는다고 느낀다.
머리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다. 이틀에 걸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장만한 책을 하나씩 꺼내어 읽는다. 어제 집으로 책 한 상자 보내며 상자꾸러미에 안 넣은 책을 읽는다. 시골집까지 돌아가는 버스길에 읽으려고 열 권 즈음 따로 챙겼다. 마흔 해 묵은 이야기를 읽고 스무 해 묵은 이야기를 읽는다. 쉰 해 가까운 이야기를 읽고 열 해 즈음 된 이야기를 읽는다. 어느 이야기를 읽든 오늘 내 삶하고 가까이 잇닿는다.
시골집에서는 깊은 밤이나 새벽에 일어나 글쓰기를 했으나, 부산마실 와서 잠을 얻어 자는 이곳에서는 셈틀을 쓸 수 없기에 책을 읽는다. 부산에 계신 책벗 댁에서 머물기에 이렇게 책을 읽는다. 따로 여관을 잡아서 묵었으면, 여관에 있는 셈틀을 켜고 글을 썼겠지. 글을 써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다. 생각해 보면, 글은 피시방으로 가서 써도 되는 만큼, 이렇게 깊은 밤에 몸을 정갈히 씻고 나서 물기 마르기를 기다리며 한 시간 남짓 책을 읽을 수 있어 퍽 좋구나 싶기도 하다.
신문 돌리는 오토바이 소리 띄엄띄엄 듣는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자전거를 몰아 골목골목 신문 돌리던 일이 떠오른다. 나는 자전거 몰며 신문을 돌렸기에, 내 자전거 지나갈 적에는 소리 거의 안 낸다. 내리막길 달릴 때에는 무거운 신문짐을 버티느라 멈추개 쥐느라 끼익끼익 소리를 내지만, 다른 데에서는 자전거 달리는 결 그대로 오른손으로 신문 탁탁 허벅지에 치며 두 번 접고는 오른손목 살며시 움직여 휘익 하고 골목집 문간으로 던져 넣었다.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으니 마음속으로 더 잘 스며들까. 시끄러운 곳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곱게 갈무리할 수 있으면 책은 얼마든지 즐거이 읽을 수 있을까. 시골집에서는 콧물 흐르지 않으나, 도시에만 나오면 어김없이 콧물 흐른다. 집안과 집밖에서 흐르는 바람이 도시에서는 몹시 안 좋으니까 이렇게 된다고 느낀다. 도시마실이란 우리 시골집 터전 얼마나 어여쁜가를 새삼스레 느끼도록 돕는다. 4346.4.24.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