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느티나무 보았니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에 누군가 나들이를 온다면 무엇을 보여줄 만할까 헤아려 본다. 바닷마을이니 사람들은 날물고기 살점 먹고 싶을까. 숲마을이니 숲길 걷고 싶을까. 들마을이니 싱그러운 들나물 맛보고 싶을까.


  시골에서는 마당 평상에 앉아 해바라기 하면서 바람소리 듣기만 해도 좋다. 구름 흐르는 물결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읍내로 나들이를 간다면, 아니 고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으레 고흥읍에 내리기 마련이니, 고흥읍내로 마중을 나가 만난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팔백 살 훨씬 넘은 느티나무를 보여준다.


  느티나무 보러 가자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뭔 느티나무?’ 하고 여긴다. 느티나무라 하면 도시에서도 퍽 흔한 나무로 여기니 그럴밖에 없으리라. 시골사람도 느티나무는 ‘뭔 그런 나무를 보러?’ 하고 여긴다. 그러나, 막상 팔백 살 훌쩍 넘은 느티나무 앞에 서면, 모두들 말을 잊는다. 참말, 팔백 살 넘은 느티나무 앞에 서면 어떠한 말도 나올 수 없다.


  아이들 자라고, 이 아이들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이 아이들이 아이를 낳으면 천 살 훨씬 넘는 느티나무 될 테지만, 모르리라. 이 느티나무는 팔백예순 살 즈음 아닌 천 살 넘은 느티나무일 수 있으니까.


  “봄에 느티나무 보았니?” 나무를 잘 알거나 나무를 잘 모르거나, 봄이 되면 꼭 이 한 마디를 묻고 싶다. “가을에 느티나무 보았니?” 나무를 좋아하거나 나무를 아랑곳하지 않거나,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이 한 마디를 묻고 싶다. “느티나무를 가슴을 대며 꼭 껴안아 보았니?” 언제라도 누구한테라도 이 한 마디를 묻고 싶다.


  봄에 느티나무를 못 보았다면, 가을에 느티나무를 못 보았다면, 여름과 겨울에 느티나무를 못 보았다면, 반드시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차례씩 느티나무를 만나 살포시 안아 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느티나무를 넉넉히 품에 안고 1분쯤 눈을 감으며 느티나무 마음을 읽은 뒤, 비로소 책을 손에 쥐라 이야기하고 싶다.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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