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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파노와 곰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0
야노쉬 지음, 전희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3
사랑 없는 사람이 바보
― 참파노와 곰
야노쉬 글·그림,전희경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1998.11.10./7000원
다그치는 말이나 닦달하는 말은, 말하는 사람한테도 듣는 사람한테도 참 얄궂다고 느낍니다.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한다면, 왜 기다리지 못할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참말 늑장을 부리거나 꾀를 쓰거나 게으름 피우기에 다그치거나 닦달을 할까요. 그저 내가 보기에 갑갑하거나 더디구나 싶어 다그치거나 닦달할까요.
봄을 맞이한 시골 들판에 온갖 들풀과 들꽃 가득합니다. 일찌감치 돋는 봄풀 있고, 좀 느즈막하게 돋는 봄풀 있습니다. 삼월 끝무렵 하나둘 피어나는 자운영 가리키면서, 여봐 자운영, 넌 말야 왜 이리 늦게 피나, 삼월 첫머리에 피면 안 되겠니, 하고 다그칠 수 없어요. 이월 첫머리부터 피어나는 봄까지꽃이랑 별꽃 바라보면서, 이봐 봄까지꽃 별꽃, 너희 말야 왜 이리 일찍 피나, 삼월 넘어선 뒤에 피면 안 되겠니, 하고 닦달할 수 없어요.
.. 그곳에서 곰은 다시 한 번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파노는 곰의 머리를 장화발로 짓밟고 소리쳤습니다. “자, 보십시오! 무엇이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습니까!” .. (16쪽)
때가 되면 새싹 돋습니다. 때가 되면 꽃이 핍니다. 매화나무는 벌써 꽃망울 터지다가는 꽃잎 하나둘 져요. 동백나무는 매화나무보다 일찍 꽃망울 터뜨리면서 오래오래 꽃내음 퍼뜨리다가 천천히 져요. 그런데, 감나무는 아직 새잎조차 트지 않아요. 대추나무도 한참 멀었어요. 모과나무는 이제 잎이 펴질락 말락 한창입니다.
나무마다 때가 다르고 철이 다르지요. 나무마다 잎사귀랑 꽃망울 모두 다르지요. 나무마다 열매랑 씨앗 또한 다 달라요. 이 나무들더러, 왜 너는 일찍 피고, 왜 너는 늦게 피느냐, 느티나무더러 왜 느티꽃은 꽃망울 알아보기 힘들 만큼 작고 푸른 빛깔이느냐, 이러쿵저러쿵 따질 수 없어요.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빛으로 환한 줄 느끼지 못한 채 다그친다면,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빛으로 어우러져 지구별이 따사로운 사랑으로 가득한 줄 깨닫지 못한 채 닦달한다면, 나는 나 스스로 바보가 되고 말아요.
.. 밧줄이 끊어지면서 참파노가 더 높이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참파노는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우리 마을 위를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더니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곰은 한동안 파리를 쫓아다녔습니다 .. (24쪽)
야노쉬 님 그림책 《참파노와 곰》(시공주니어,1998)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려 했다가, 나 혼자 읽고 그만둡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깨우침 건네는 좋은 그림책이라 할 만하지만, 참파노라 하는 어른이 곰을 발로 밟는 모습까지 나오는 대목은 너무 슬픕니다. 게다가, 곰 스스로 슬픔을 깨달아 굴레에서 벗어난 흐름이 아니라, 파리를 좇다가 얼결에 굴레가 풀린 얼거리는 달갑지 않습니다.
왜 참파노는 바보짓을 하며 스스로 바보가 될까요. 왜 곰은 바보짓에 끄달리면서 스스로 삶을 깨치지 못할까요. 참파노가 곰재주 부리는 짓을 시키며 돈벌이를 할 적에, 왜 마을 어른과 아이는 곁에서 말리지 않고 멀거니 구경만 할까요.
영화 〈라 스트라다〉를 보면, 이 영화에도 ‘참파노’라는 사내가 나옵니다. 영화에 나오는 참파노는 ‘젤소미나’라 하는 아가씨를 괴롭히기만 하는데, 참파노 스스로 가슴속에서 따순 사랑을 길어올리지 못합니다. 스스로 오랫동안 길들이며 갇힌 굴레를 스스로 떨치지 못합니다. 삶이 무엇이요, 사랑이 무엇이며, 사람이란 어떤 숨결인가를 스스로 깨달으려 하지 못해요.
그림책 《참파노와 곰》에 나오는 참파노도 이와 같아요. 게다가, 《참파노와 곰》에 나오는 곰조차 아무것도 못 깨달아요. 그림결은 곱고, 어떤 가르침이 뚜렷하지만, 나는 이 그림책을 아이들과 나눌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그림책은 고운 그림결이나 뚜렷한 가르침 두 가지만으로는 빚을 수 없거든요. 그림책은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꿈을 아름답게 엮을 때에 비로소 그림책이라 할 만하거든요.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