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빚기
― 필름으로 찍어서 긁기

 


  어린 두 아이와 시골에서 살아가며 집살림 도맡다 보니, 필름사진을 찍은 뒤에는 스무 통 남짓 필름이 모일 즈음 비로소, 아하 필름 맡겨서 찾아야 하는데 하고 깨닫는다. 한 꾸러미 모인 필름을 주섬주섬 상자에 꾸려서 서울로 보낸다. 전라도 고흥 시골자락에서는 필름 찾을 데가 없기도 하고, 일포드 델타 400 프로페셔널이라 하는 흑백필름을 감도 1600으로 올려서 찍은 필름을 빛결 잘 살려 찾아 줄 만한 데를 찾기란 퍽 어렵기도 하다.


  서울로 보낸 필름은 이레 만에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스물대여섯 통쯤 찍은 필름 가운데 한 통은 아무것도 안 찍혔다. 틀림없이 다 감기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 사진기 뚜껑을 닫았으나, 한 장씩 감으며 찍을 적에 어딘가 헐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막상 감아서 넣은 필름을 열어서 볼 수도 없고. 어쩌면 아무것도 안 찍힐는지 모른다 생각하며 그냥 찍으며 하늘에 맡겼는데, 참말 하늘에 맡겨서는 안 되겠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앞에서 찍은 몇 장 날린다 하더라도 뚜껑을 열어 필름이 제대로 감겼는가 다시 살펴야겠다고 느낀다. 제대로 감겼으면 한숨을 고르고, 제대로 안 감겼으면 아이쿠 잘 열었네 하고 생각할 테지.


  저녁은 깊어 간다. 작은아이는 졸립다 칭얼거린다. 안고서 쉬를 누여 본다. 쉬를 안 눈다. 그래, 그러면 누지 말아라. 자, 안아 줄 테니 코 자자. 작은아이 안고 작은이불로 감싼다. 셈틀 앞에 앉아 필름을 스캐너에 얹는다. 한손으로 아이 안고 한손으로 스캐너에 필름 얹어 움직이자니 퍽 힘이 든다. 그러나, 이 아이들 데리고 골목마실이나 책방마실 하면서 한손으로 아이 안고 한손으로 사진찍기 얼마나 많이 오랫동안 했던가. 그러고 보면, 밤에 자다가 똥을 눈 아이를 살며시 안아 깨지 않도록 다독이면서 밑을 씻긴 다음 똥바지 빨래까지 한 적도 있는걸.


  큰아이도 잠자리에 누인다. 큰아이한테 오늘 하루 더 즐겁게 놀지 못했다 이야기하고, 오늘 코 자고 이듬날에는 아버지가 한결 즐겁게 오래오래 놀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필름스캐너 다 긁었다는 소리 난다. 새 필름 얹는다. 다시 아이들 잠자리로 가서 머리카락 쓸어넘긴다. 가슴 토닥토닥 하면서 코코 꿈나라에서 훨훨 날며 예쁜 놀이 누리기를 빈다.


  지난해 팔월부터 올 삼월까지 찍은 필름들은 언제 다 긁을 수 있을까. 여섯 달 뒤 부산에서 사진잔치 할 수 있도록 바지런히 필름을 다 긁고, 다 긁은 사진파일 잘 갈무리해서 사진책으로 엮도록 보낼 수 있으려나. 이렇게 하자면 그야말로 바삐 움직여야 할 텐데, 하루에 필름 한 통씩 긁어 보자고 생각해 본다. 큰아이 글씨쓰기 가르치면서 필름 얹고, 또 그림그리기 함께하다가 필름 긁고, 이렇게 하노라면 하루에 한 통씩 어찌저찌 긁을 수 있으리라. 내 필름스캐너는 36장 필름 한 통 긁는 데에 한 시간 반쯤 걸린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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